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지독한 가난 이겨내고 공무원 된 미옥이… 그녀의 인생 바꾼 건 담임 선생님이었죠

입력 : 2024.05.30 03:30
[재밌다, 이 책!] 지독한 가난 이겨내고 공무원 된 미옥이… 그녀의 인생 바꾼 건 담임 선생님이었죠
미오기傳

김미옥 지음|출판사 이유|출판가격 1만8000원

아버지가 빚보증으로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이듬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어머니 홀로 다섯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죠.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한 가닥 희망을 품어요. 막내 미옥이와 열한 살 터울 장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해서든 큰애를 공부시키면 그 아이가 둘째를 공부시키고, 둘째가 셋째를, 셋째가 넷째를… 이건 엄마 나름대로 현명한 셈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초반부터 어긋나고 말아요.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망갔기 때문이에요. 미옥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에요.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며 집을 나가버렸어요. 엄마는 그런 언니에게 크게 화가 났고, 그 불똥이 막내 미옥에게 튀어요. 엄마는 이제 겨우 6학년밖에 되지 않은 미옥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합니다. 미옥이가 벌어 오는 돈을 오빠들 학비에 보태려는 것이었죠. 이러는 엄마를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어요. 지독한 가난과 절박한 상황을 버텨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바로 이때 미옥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타나요. 담임 선생님이에요. 미옥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공장으로 가게 되자 선생님께서 집으로 찾아와요. 학교를 꼭 다녀야 할 아이라며, 자기가 미옥이를 양녀로 입양하겠다고 엄마와 다툽니다. 공사판 막노동을 하던 억센 엄마와 쉰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온 고집 센 선생님의 한판 대결에 동네가 시끄러워졌죠.

양녀로 삼으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담임 선생님은 미옥이 있는 공장으로 찾아가거나 휴일에 미옥을 불러내 공부를 시켰어요. 검정고시로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거예요. 아무 대가도 없이, 오로지 어린 제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선생님의 믿음과 지지로 가난을 버티며 성장한 미옥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처럼 다시는 굶지 않겠다고 결심해요. 선생님은 미옥이 사법고시에 도전하기를 바라셨어요. 미옥은 선생님의 소원은 이뤄드리지 못했지만,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대학을 졸업했고 공무원이 됩니다. 긴 세월이 흐르고,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요. 미옥은 빈소에서 이렇게 말해요. "다음에 태어날 때 선생님 딸로 태어나죠, 뭐. 그때는 선생님 원하시던 판사도 되어볼게요. 최숙자 선생님, 아니 엄마."

마치 오래된 소설이나 동화 같지만,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모두 실화예요. 2019년부터 소셜미디어(SNS)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유명해진 김미옥 평론가의 수필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슬픔으로만 가득 찬 책은 아닙니다. 저자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가 담겨 있어요. 저자는 자신의 서글픈 기억들을 글로 쓰면서 과거와 화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요. 아픈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읽으면 위로가 될 거예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