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얼씨구 국악] 악기 만들고 작곡까지… 세종대왕,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죠

입력 : 2024.05.23 03:30

세종대왕과 음악

세종대왕 표준 영정. 세종대왕은 뛰어난 음악 재능으로 음악과 관련한 것들을 정비하고 이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했어요.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소장
세종대왕 표준 영정. 세종대왕은 뛰어난 음악 재능으로 음악과 관련한 것들을 정비하고 이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했어요.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소장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가였어요. 유교는 제사 같은 의식을 지칭하는 '예(禮)'와 그와 관련된 '악(樂)'의 실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예와 악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라의 각종 의례와 여기에 쓰일 음악이 무척 중요했답니다.

조선 왕들 중에는 음악 재능이 뛰어난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이 때문에 예악에 필요한 음악이나 제도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음악에 재능이 없으면 음악에 뛰어난 신하를 등용하고 음악 관련 제도를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고려 시대 음악을 조금씩 편곡해 사용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달랐어요. 바로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재위 1418~1450)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대마도 정벌 등 굵직한 업적을 많이 남긴 왕입니다. 그가 이외에도 음악과 관련된 많은 일을 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조선 제9대 왕 성종 시절 만들어진 음악 이론서 '악학궤범'을 보면 세종대왕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군으로, 음률(音律)에 정통(精通)해 종전의 나쁜 관습을 깨끗이 씻으려 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종대왕은 뛰어난 음악 재능으로 음악과 관련한 것들을 정비하고 이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절대 음감의 소유자

세종대왕은 임금이 된 후 신하 박연을 악학별좌(樂學別坐)에 임명해요. 박연은 세종의 아버지 태종 시절에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교리, 중추원 부사 등을 맡으며 일해온 신하였어요. 그런 그의 음악성을 세종이 알아보고, 궁중 음악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관직을 맡긴 거예요. 박연은 악학별좌로 일하며 '아악'을 정비합니다.

아악은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악을 말해요. 제사는 유교에서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였던 만큼, 왕이 된 세종은 가장 먼저 제사 음악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거예요. 아악은 원래 중국 고대 음악으로,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들여왔어요. 그래서 고려 시대에도 아악이 있었죠. 하지만 고려 후기 여러 혼란을 겪으면서 나라가 갖고 있던 아악 악기들이 망가지거나 제대로 된 음을 내지 못해 아악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세종은 박연에게 아악의 기본음을 낼 수 있는 악기를 만들라고 지시했어요. 박연은 아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음인 '황종(黃鍾)'을 낼 수 있는 대나무 율관을 제작하죠. 그리고 이 음을 기준으로 아악에서 주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인 편경과 편종을 만들어냅니다.

편경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화 하나가 세종실록에 실려 있어요. 편경은 'ㄱ' 자 모양으로 깎은 옥돌 16개를 틀에 걸어 연주하는 악기예요. 옥돌의 두께를 다르게 해 음의 높이를 조절했죠. 옥돌을 조금이라도 잘못 깎으면 잘못된 음이 날 수밖에 없어요. 박연이 새로 만든 편경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세종대왕은 '이칙(夷則)'이라는 음이 높다고 지적해요. 박연이 살펴보니 이칙 음을 내는 돌의 한쪽 끝이 완전히 갈리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이를 다 갈았더니 정확한 이칙 음이 났다고 해요. 수정 전후 음 차이는 아주 미세했다고 하는데요. 보통 사람들은 구별하지 못했을 테지만, 세종대왕은 놓치지 않았던 거예요.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던 것이죠.

직접 작곡한 음악들

아악 정비를 마친 세종대왕은 궁중 행사에 사용하던 우리나라 고유 음악인 '향악'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세종대왕은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등 곡을 직접 만들었어요. 세종실록을 보면, '임금은 음률을 깊이 깨닫고 계셨다. 새로운 음악의 장단과 음의 높고 낮음은 모두 임금이 만드셨는데, 막대기를 짚고 땅을 치는 것으로 하루 저녁에 제정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짧은 시간에 뚝딱 작곡을 해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이렇게 만든 곡들을 직접 창안한 '정간보'라는 악보에 기록했답니다.

세종대왕은 종묘제례악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조선에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만연해 있었어요.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올릴 때도 아악을 연주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아악이 본래 중국 음악이므로 우리나라 왕과 왕비에 대한 제사에서는 향악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왕들이 갖춘 학문의 덕을 찬양하는 곡 '보태평'과 왕들의 군사적 공을 찬양하는 곡 '정대업'을 작곡했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 당시에는 신하들의 반대로 종묘제례악에 쓰지 못하고 궁중 행사 음악으로 사용했어요. 그러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세조가 이를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했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 사람에 의해 역사가 바뀌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세종대왕은 누구나 인정하는 성군이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그가 없었다면 조선의 음악 발전은 정말 더뎠을 거예요. 조선이 음악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바탕에는 세종대왕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악기 편경을 연주하는 모습. /국립국악원
악기 편경을 연주하는 모습. /국립국악원
악기 편종. /국립국악원
악기 편종. /국립국악원
2017년 종묘에서 종묘제례악이 연주되고 있어요. /장련성 기자
2017년 종묘에서 종묘제례악이 연주되고 있어요. /장련성 기자
이동희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교수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