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부부의 사랑·장수 상징… 직접 나비 잡으러 다닌 화가도
입력 : 2024.05.20 03:30
그림 속 나비들
- ▲ 작품1 - 김홍도, ‘나비’, 1782년. /국립중앙박물관 ‘옛 그림 속 꽃과 나비’
행복의 교훈을 전해주는 나비
〈작품1〉은 나비와 꽃이 그려진 종이부채인데,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작품이에요. 부채 오른편 아래엔 흰 찔레꽃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나비 세 마리가 날고 있어요. 나비 옆에는 '장자 꿈에 나타난 나비가 어찌하여 부채 위에 떠올랐더냐'라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김홍도가 그린 것은 장자의 꿈속 장면인가 봅니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쯤 살았던 중국 전국 시대 사상가인데, 그는 어느 날 꿈에서 나비가 되어 꽃밭에서 팔랑팔랑 춤추며 즐거워했다고 해요. 그런데 꿈이 너무나 생생했던 탓일까요? 장자는 잠에서 깬 후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본래 나비인데 잠시 사람이 된 꿈을 꾼 것인지, 어느 쪽이 사실인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대단해 보이는 누군가의 인생도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답니다. 인생의 무상함, 덧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거죠. 그래서 옛 선비들은 출세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장자의 나비 꿈을 자주 거론했다고 해요.
관찰한 꽃과 나비를 그림으로
조선의 학자들 중에는 집에 꽃밭을 만들어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을 취미로 삼은 이가 많았습니다. 매일매일 꽃을 들여다보며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덕도 키울 수 있었지요. 꽃 가꾸는 취미를 가진 선비들은 진귀한 꽃을 수집하기도 하고, 꽃 그림을 주문하거나 직접 그리기도 했어요.
〈작품2〉는 19세기 문인 화가 신명연(1808?~1886)이 고운 비단 위에 그린 분홍빛 월계화와 나비들입니다. 왼쪽 아래에서 대각선으로 뻗어 올라가는 월계화 위로 호랑나비가 날고 있어요. 작은 월계화 꽃송이에는 배추흰나비가 살포시 앉아 있네요.
신명연의 아버지는 당시 우리나라에 피지 않았던 외래종까지 포함해 다양한 꽃들을 정원에서 키웠다고 합니다. 신명연이 그린 다른 꽃 그림을 보면, 연꽃, 수국, 모란 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등장하는데 아버지의 꽃밭에서 보고 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그린 나비 역시 꽃밭에 온 나비를 직접 관찰해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꽃이 있는 곳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나비인 만큼, 꽃과 나비를 함께 관찰해 그린 것이죠.
〈작품3〉은 비슷한 시기에 화가 남계우(1811~1890)가 그린 나비 그림입니다. 금가루가 화려하게 뿌려진 붉은색 종이 위에 나비들이 그려져 있어요. 나비들은 저마다 다른 무늬와 색으로 자세히 표현돼 있네요. 남계우는 나비를 특히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그는 나비 그림을 위해서 희귀한 나비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해요. 그가 그린 나비를 실제 나비와 비교해 보면, 날개 무늬까지 똑같이 묘사했다는 걸 알 수 있답니다. 심지어 암수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려진 나비 그림들도 있다고 해요.
서양의 나비 여인, 프시케
서양 그림에서도 나비가 종종 등장합니다. 그림 속에서 나비는 대체로 부활과 영혼을 상징했어요. 유럽 사람들은 나비가 번데기에서 탈피해 날아가는 것을 육체의 죽음으로부터 영혼이 부활한 것에 비유했거든요. 고대 그리스어 '프시케'에는 '영혼'과 '나비'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답니다. 또 프시케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연인이기도 한데요. 여러 그림 속에서 프시케는 나비를 동반하거나 나비의 날개를 갖고 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작품4〉는 프랑스 화가 아돌프 부게로(1825~1905)가 그린 '프시케를 데려가는 큐피드'입니다. 여인에게 나비의 날개가 달린 것이 보이지요? 프시케는 한 왕국의 공주인데, 비너스보다 아름답다고 소문나는 바람에 비너스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 큐피드는 프시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어머니 비너스의 눈을 피해 프시케와 부부가 됩니다. 부게로의 그림이 바로 큐피드가 프시케를 비밀스러운 둘만의 저택으로 데려가는 장면이에요.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비너스는 둘을 영원히 떼어놓기 위해 프시케에게 인간이 해낼 수 없는 과제를 내립니다. 큐피드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프시케는 그것을 해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사랑의 화살로 장난이나 일삼던 큐피드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최고의 신, 주피터에게 진심을 다해 빌었어요. 주피터는 둘의 사랑에 감동해 프시케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주었답니다.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프시케는 처음엔 그저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사랑하는 큐피드를 되찾기 위해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 불멸의 영혼을 가지게 됐습니다. 사랑에 미숙하던 큐피드와 프시케는 시련을 겪으면서 사랑이 더욱 단단해졌고, 성숙한 부부로 거듭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 작품2 - 신명연, ‘꽃과 나비’, 1864년. /국립중앙박물관 ‘옛 그림 속 꽃과 나비’
- ▲ 작품3 - 남계우, ‘나비 군접도’,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옛 그림 속 꽃과 나비’
- ▲ 작품4 - 아돌프 부게로, ‘프시케를 데려가는 큐피드’, 1895년.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