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정약용이 만든 실용적인 기계들 덕에 10년 걸릴 공사 3년도 안 돼 끝냈죠

입력 : 2024.05.14 03:30

수원화성

수원화성 성곽 일부.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문화재청
수원화성 성곽 일부.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문화재청
지난달 수원 '화성행궁'이 119년 만에 원형 그대로 복원됐어요.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되다가 임금이 수원에 행차할 때는 임금과 수행 관원이 머무는 궁실로 이용된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에에 크게 훼손됐다가 1989년 시민들의 건의로 복원 공사가 시작됐어요.

화성행궁은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안에 있어요. 정조는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강했어요. 정조는 임금이 된 후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립대' 뒷산)에 있던 아버지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이장했는데요.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새롭게 지낼 곳으로 수원시 팔달산 아래를 점찍고 수원화성을 만들었어요.

수원화성의 둘레는 약 5.74㎞, 최대 높이는 약 6m에 달해요. 동쪽 지형은 평지이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어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으로 지어졌어요. 수원화성은 백성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이면서 적이 쳐들어오면 대응할 수 있는 군사 기능을 갖춘 시설이었죠.

수원화성은 18세기 다양한 축성술이 집대성되어 있어요. 화강암을 쌓아 성곽을 짓던 전통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성곽의 특징인 벽돌벽을 적극 도입했어요. 석벽은 단단하지만 화포에 제대로 맞으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맞은 부위에만 구멍이 나는 벽돌벽을 함께 사용해 문제점을 보완했어요. 또 성으로 접근하는 적에게 화포를 쏘기 위해 만든 시설물인 '포루', 성문 앞에 설치된 반원 모양의 '옹성', 적의 동향을 살피며 공격할 수 있는 '공심돈' 등 군사 시설을 일정한 거리마다 배치해 효용성을 높였어요.

수원화성은 실용주의 정신이 담긴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수원화성 설계를 담당한 실학자 정약용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정리한 중국 서적을 연구해 다양한 건설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리는 '거중기', 무거운 물건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기존의 수레를 보완한 '유형거' 덕분에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10년이 예상됐던 성곽 공사가 3년이 되지 않아 끝난 비결이에요.

'우리나라 성곽 건축의 꽃'으로 불리는 수원화성은 6.25전쟁을 겪으며 크게 훼손됐어요. 하지만 축성 재료의 출처와 가공법, 공사 일지, 비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된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어요. 현대 사람들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축조 당시 선조들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복원했기 때문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어요. '화성성역의궤' 또한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