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1300년 전엔 뿌리로 종이 만들어… 몽골선 흔하지만 우리나라선 멸종 위기 식물

입력 : 2024.05.06 03:30

피뿌리풀

피뿌리풀에 꽃이 핀 모습. 피뿌리풀은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 식물로 가치가 높아요. /국립생물자원관
피뿌리풀에 꽃이 핀 모습. 피뿌리풀은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 식물로 가치가 높아요. /국립생물자원관
너무 아름다워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식물이 있어요. 꽃이 피어 있는 이 식물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와!" 하고 탄성을 내며 시선을 뺏기고 말죠. 이맘때쯤 붉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며 꽃다발처럼 꽃이 피는 '피뿌리풀'이에요. 피뿌리풀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 오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 등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감소해 이제는 쉽게 보기 힘들어졌어요.

피뿌리풀은 몽골, 중국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에는 제주도와 황해도 이북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져 있어요. 몽골에서는 초원을 덮을 정도로 흔하게 자란다는 피뿌리풀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동부 지역 일부 오름에서만 자란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제주도에만 피뿌리풀이 자라는 이유와 관련해, 몽골족이 고려를 침략해 제주도에 목장을 만들고 말을 방목하는 과정에서 유입됐다는 가설과 빙하기에 남쪽으로 내려온 식물이 살아남은 거라는 가설이 있었어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연구 결과가 2020년에 발표됐습니다. 제주도와 중국 운남, 몽골 등에 자라는 피뿌리풀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제주도 피뿌리풀은 몽골에서 유입된 것이 확인됐어요. 제주도 피뿌리풀 기원은 몽골에서 건너왔다는 근거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거죠.

피뿌리풀은 팥꽃나뭇과(科)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독성이 있는 식물이에요. 더덕처럼 생긴 굵은 뿌리는 나무처럼 딱딱하며 땅속으로 깊숙하게 자라요. 줄기는 높이 15~40cm 정도로 자라고 여러 개가 한데 뭉쳐 나요. 잎은 길이 2cm 정도이며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꽃은 5월쯤에 피며, 줄기 끝에 10~40개 정도가 한데 모여 피어요. 작은 꽃들이 둥글고 촘촘하게 달린 모습이 마치 붉은색 꽃다발처럼 보여 정말 매력적입니다.

피뿌리풀은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가치가 높아요. 독성이 매우 강한 식물이지만 피부 상처 치유 및 항염 성분이 있어 중국과 몽골에서는 약재로 사용해요. 티베트 사람들은 약 1300년 전부터 피뿌리풀 뿌리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었어요. 피뿌리풀 뿌리로 만든 종이는 두껍고 튼튼했대요. 보존 기간이 길고 벌레가 잘 꼬이지 않으며 방부성, 방습성이 매우 훌륭해 불교 경전 만들 때 많이 사용됐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개체 수가 줄어 2017년부터 멸종 위기 야생 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국과 몽골에서는 초원의 사막화를 일으키는 식물로 여겨집니다. 피뿌리풀의 뿌리가 매우 길고 튼튼해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식물이 중국과 몽골에서는 초원의 황폐화를 상징하는 식물 중 하나라고 하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