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어른은 '뿌리', 어린이는 '싹'… 뿌리가 싹 위해야 나무 잘 자라"

입력 : 2024.05.02 03:30

선생님, 방정환이 누구예요?

[재밌다, 이 책!] "어른은 '뿌리', 어린이는 '싹'… 뿌리가 싹 위해야 나무 잘 자라"
배성호 지음|출판사 철수와영희가격 1만5000원

소파 방정환(1899~1931)은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이에요. 서른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경이로울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어린이날 창시자'라는 수식어가 강력하다 보니, 그의 독립운동과 문예 활동은 덜 알려진 면이 있는데요. 방정환은 자택에서 독립신문을 등사해 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어요. 또 '어린이' '신여성' 등 잡지 10여 개를 발행하는 등 우리 민족의 사상과 지평을 넓히는 문예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답니다.

그는 호소력 있는 소년 보호 운동 문구를 만들어낸 유능한 카피라이터였고, 동화 구연대회, 강연회 등을 1000번 이상 진행하는 등 무대 위에서 대중을 사로잡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어요. 또 날카로운 시각과 관점을 지닌 인물이기도 해요. 방정환은 일제강점기 빈부 격차와 지도층의 패륜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한 '은파리'시리즈를 여러 잡지에 필명으로 기고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어린이'라는 말은 1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방정환은 아이들에게도 인격이 있다며 이를 존중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리지만 엄연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널리 쓰자고 제안했어요. 이전까지는 주로 '아들놈' '딸년'처럼 어린이를 낮추어 불렀죠. 그러니까 '어린이'라는 단어는 오래된 관습을 뒤엎는 개혁적인 생각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어린이'에 담긴 이런 의미를 잘 새기고 있을까요? 최근 들어 주린이, 등린이 등의 표현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주식 초보자와 등산 초보자를 뜻해요. 어딘가 서툴고 미숙한 사람을 의미하죠.

책은 '~린이' 같은 표현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이 퍼져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해요. 또 '노키즈존'은 어린이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다고 설명해요. 어린이를 모두 소란 피우고 타인을 방해하는 존재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른은 뿌리라고 하면 어린이는 싹입니다. 뿌리가 근본이라고 위에 올라앉아 싹을 내리누르면 그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뿌리가 원칙상 싹을 위해야 그 나무는 뻗쳐 나갈 것입니다." 방정환이 발표한 '어린이 해방 선언'에 등장하는 내용이에요. 지금 우리는 어린이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네요.

저자는 이 선언문 등을 통해 방정환이 꿈꾼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설명해줍니다. 방정환의 일생과 어린이의 인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에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