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18세기 '아동 존중' 퍼져… 화폭에도 여러 어린이 모습 등장

입력 : 2024.04.29 03:30

어린이를 그린 명화들

작품1 - 라파엘로, ‘시스티나의 성모’ 일부분, 1513년쯤.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작품1 - 라파엘로, ‘시스티나의 성모’ 일부분, 1513년쯤.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새싹 같은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며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이죠. 어린이가 곧 미래의 희망이라는 걸 모두에게 일깨워 주려는 날이기도 해요.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농어촌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입학생이 없어 초등학교가 문을 닫기도 해요. 어떻게 하면 어린이가 많은 희망찬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어린이날을 앞두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약 100년 전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하고 어린이날을 구상한 방정환(1899~1931) 선생이 평소에 강조하던 말입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작고 약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인격을 가진 존재로 존중하자는 뜻이죠.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

18세기 무렵 유럽에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유럽 지식인들은 어린이를 어른과 구별돼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어린이는 보호해야 하고 이끌어 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개념이 이때 생겨났습니다. 영국의 존 로크나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 등 교육철학자의 영향으로 바람직한 아동 양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는데요. 로크는 어린이가 가장 어린이다울 때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라고 지적하면서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배운다'고 했습니다.

루소는 어린이에게는 정성과 애정, 그리고 올바른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한 포기 풀이 싱싱하게 자라려면 따스한 햇볕이 필요하듯, 한 인간이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칭찬이라는 햇살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이런 분위기 덕분에 18세기부터는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특히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은 화가들은 교훈적인 내용을 그림 속에 담아내기도 했답니다. 대표적인 그림을 살펴볼까요?

현실 속 어린이들을 그리다

18세기 이전에도 아이를 모델로 삼은 그림들은 있었어요. 하지만 주로 천진스럽고 귀여운 아기 천사나 사랑의 화살을 쏘아대는 장난스러운 신 '큐피드'처럼 상상 속의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1483~1520)가 그린 통통한 몸집과 동글동글한 얼굴의 두 아기 천사<작품 1>가 바로 그 예랍니다. 현실의 어린이가 화폭에 담기는 경우는 왕실 가족을 기록하려고 그린 왕자나 공주의 공식 초상화 외에는 드물었어요.

18세기에는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에 나타나요. <작품 2>를 볼까요? 프랑스 로코코풍의 화가 마르그리트 제라르(1761~1837)가 그린 '첫걸음마'인데요. 하얀 천 자락이나 보조 기구에 의지해서 발을 한 걸음씩 옮겨 보려는 아가들이 있고, 그 주위로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지켜보는 어머니들이 보입니다. <작품 3>은 장 바티스트 그뢰즈(1725~1805)의 '조용히!'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젊은 어머니가 세 아이와 함께 있어요. 한 아이는 이미 잠들었고, 또 한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드는 중이에요. 그런데 왼쪽에 있는 아이는 더 놀고 싶은가 봅니다. 조그만 장난감 나팔을 힘껏 불고 싶은데,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살짝 심통이 난 것 같아요. 제라르와 그뢰즈의 그림은 아이 양육이 여성에게 힘들지만 자연스러운 일이고, 행복과 보람의 원천이라는 교훈을 슬며시 전하고 있지요.

<작품 4>는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이 그린 '가정교사'입니다. 아이가 방을 엉망으로 어지럽혀 놨어요. 바닥에 운동 도구와 카드가 흩어져 있고, 가정교사 손에는 먼지가 묻은 아이의 모자와 먼지 터는 솔이 들려 있네요. 가정교사는 물건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지 말고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아이를 조용히 타이르고 있는 것 같아요. 눈을 내리뜨고 있는 아이 표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어린이가 잘못했을 때 심하게 꾸짖거나 벌을 주지 말고 온화하게 조목조목 일깨워 줘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자유롭고 순수한 어린이 모습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이 아닌, 야외에 있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은 19세기 이후부터 늘어납니다. 순수한 모습의 어린이가 산뜻하고 싱그러운 자연과 함께 있는 그림을 보면 누구라도 흐뭇한 기분이 들 거예요. <작품 5>가 바로 그런 그림입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가 그린 '물뿌리개를 든 소녀'예요.

햇빛 좋은 야외 풍경을 즐겨 그리는 인상주의 화가답게 르누아르는 그림의 배경으로 컴컴한 실내가 아닌 환한 바깥 풍경을 넣었지요. 어린이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야외의 빛과 공기가 느껴집니다. 그림 속 꼬마 아가씨는 물뿌리개를 들고 정원의 꽃들과 아침 인사를 하는 중인 것 같아요. 작은 손에 활짝 핀 꽃 두 송이가 들려 있어요. 누구에게 주려고 딴 것일까요? 꽃을 건네려는 아이의 예쁜 마음이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네요.
작품2 - 마르그리트 제라르, ‘첫걸음마’, 1788년쯤. /예르미타시 미술관
작품2 - 마르그리트 제라르, ‘첫걸음마’, 1788년쯤. /예르미타시 미술관
작품3 - 장 바티스트 그뢰즈, ‘조용히!’, 1759년. /영국 왕실
작품3 - 장 바티스트 그뢰즈, ‘조용히!’, 1759년. /영국 왕실
작품4 - 장 시메옹 샤르댕, ‘가정교사’, 1739년. /캐나다 국립 미술관
작품4 - 장 시메옹 샤르댕, ‘가정교사’, 1739년. /캐나다 국립 미술관
작품5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뿌리개를 든 소녀’, 1876년.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작품5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뿌리개를 든 소녀’, 1876년.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