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한 번에 먹이 소화 못하는 토끼… 영양분 남은 '묽은 똥' 먹어

입력 : 2024.04.16 03:30

똥을 먹는 동물들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인간은 불을 사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어요. 인간처럼 요리를 하지 못하는 동물은 과일이나 풀을 먹거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죠. 그런데 과일, 풀 등을 놔두고 인간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을 먹는 동물이 있어요. 과연 어떤 동물들일까요? 이들은 왜 이런 식습관을 갖게 된 걸까요?

자기 똥 먹어 영양분 섭취하는 토끼

토끼는 자신이 방금 싼 따끈따끈한 똥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토끼가 싸는 똥은 두 종류예요. 하나는 부드러우면서 묽은 똥이고 다른 하나는 동글동글하고 까만 똥이죠. 토끼는 이 중에서 묽은 똥을 먹어요.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 이유는 자신이 먹은 풀을 한 번에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몸집이 작은 초식동물 토끼는 소장과 대장의 길이가 짧아 풀을 충분히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모두 흡수하기 어렵답니다.

그런데 토끼는 신진대사가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돼요. 그래서 소화가 가능한 정도로 대충 영양분을 섭취하고 배설한 다음, 이것을 다시 먹어 완벽하게 영양분을 섭취해요. 소화가 덜 된 섬유질의 묽은 똥에는 단백질과 질소, 비타민 B2와 미네랄 등이 듬뿍 들어 있어요. 또 섬유질을 소화시킬 때 필요한 미생물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토끼의 행동은 소의 되새김질처럼 생존을 위한 본능이에요. 자기 똥을 먹지 않으면 단백질 섭취량이 15~22%나 줄고, 비타민 B2는 전혀 섭취할 수 없기 때문이죠. 토끼는 처음 묽은 똥을 싸고, 그 묽은 똥을 먹고 동글동글한 똥을 싼대요. 두 번째 똥은 영양소가 없어서 다시 먹지 않는다고 해요.

엄마 똥 먹는 새끼 코알라

새끼 코알라는 엄마 똥을 먹어요. 막 태어난 코알라는 먼저 엄마 젖을 6개월 정도 먹어야 해요. 이후에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습니다. 코알라는 오직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살거든요. 하지만 이 나뭇잎은 뻣뻣하고 독성까지 강하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엄마 코알라의 몸속 맹장에는 유칼립투스 잎을 분해하고 독성까지 해독해주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어요. 맹장은 약 2m로 매우 길어서 장내 미생물도 많아요. 하지만 새끼 코알라에겐 아직 그런 미생물이 없어요. 그래서 엄마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 대신 자기 똥을 새끼에게 먹여요. 엄마 코알라의 똥에는 잘게 분해된 유칼립투스 잎뿐만 아니라 독성을 없애줄 미생물이 가득하거든요. 엄마 똥이 곧 새끼 코알라의 이유식인 셈이에요. 한 달 동안 엄마 똥을 먹고 독성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되면 비로소 유칼립투스 잎을 먹기 시작한대요.

남의 똥 먹는 쇠똥구리와 개미

쇠똥구리는 남의 똥, 그중에서도 초식동물의 똥을 먹는 대표적인 곤충이에요. 아프리카 초원 지대에는 코끼리와 얼룩말, 코뿔소 등 수많은 초식동물이 엄청난 양의 똥을 싸는데도 파리나 구더기를 보기 힘들어요. 파리가 달려들기도 전에 약 2000종의 쇠똥구리들이 분뇨 처리 전문가로 활약하기 때문이에요.

쇠똥구리는 초식동물들이 싼 똥을 동글동글 굴려 경단처럼 만들어요. 그리고 땅속 자기 집으로 가져와서 온종일 이 똥을 먹으며 지내죠. 대부분의 쇠똥구리는 이렇게 초식동물의 똥을 먹고 살아가지만, 일부 종은 버섯이나 잎사귀 등을 먹기도 해요. 쇠똥구리가 굳이 힘들게 똥을 굴려 땅속 자기 집까지 가져오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쇠똥구리는 경단처럼 만든 동그란 똥 하나에 알을 하나씩 낳아요. 그러면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는 똥을 먹고 영양분을 얻어 성충으로 자란답니다. 애벌레에게 초식동물 똥은 밥이면서 집인 셈입니다.

개미도 남의 똥을 먹는 곤충으로 유명해요. 개미는 살아있는 곤충, 동물 사체, 식물 씨앗·열매·잎부터 설탕 같은 단것까지 가리지 않고 섭취해요. 특히 진딧물의 똥을 아주 좋아해요. 진딧물은 나뭇잎이나 나뭇가지에 붙어서 수액을 빼먹으며 살아가요. 그러다 보니 진딧물 똥은 투명하고 끈적끈적해요. 또 당분이 많아 감로(甘露)라고 불릴 만큼 달콤하죠. 개미들은 다리로 진딧물을 건드려 진딧물이 촉촉한 똥을 찔끔찔끔 싸게 만들어요. 그리고 진딧물이 배출한 달짝지근한 똥을 쪽쪽 빨아 먹는답니다.

똥을 미끼로 먹이를 사냥하는 올빼미

반면 똥을 미끼로 사용해서 곤충을 사냥하는 동물도 있어요. 바로 굴파기올빼미입니다. 대부분의 올빼미는 야행성인데, 굴파기올빼미는 특이하게 낮에도 활동해요. 굴파기올빼미는 이름처럼 땅에 굴을 파고 이를 둥지로 사용해요. 그리고 둥지 앞에 말·개·고양이 등 동물이 싼 똥을 뿌려 놓아요. 똥을 먹는 쇠똥구리나 풍뎅이, 파리 같은 곤충들이 똥 냄새를 맡고 꼬여들죠.

그러면 굴파기올빼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곤충들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굴파기올빼미는 똥을 이용하지 않고도 메뚜기·귀뚜라미 등의 곤충을 잡아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둥지 앞에 똥이 있을 때 곤충을 10배나 더 많이 잡아먹을 수 있대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