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英, 차별 없는 투표권 위해 다섯 차례 선거법 개정… 1928년부터 모든 여성 투표

입력 : 2024.04.16 03:30

보통선거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법률안의 일부 페이지. /위키피디아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법률안의 일부 페이지. /위키피디아
지난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어요. 32년 만에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67%)을 기록할 정도로 유권자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지는 선거에는 네 가지 원칙이 적용돼요. '보통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 '평등선거'입니다. 직접선거와 비밀선거, 평등선거는 말 그대로 자신이 직접 투표하고,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비밀이 보장되고, 평등하게 한 표씩 행사한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보통선거'는 어떤 의미일까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조건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원칙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많은 이의 노력이 없었다면 얻기 힘든 권리였을 거예요. 오늘은 보통선거를 위해 다섯 차례 선거법을 개정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볼게요.

14세기부터 존재한 영국 의회는 1689년 '의회의 승인 없이 왕이 마음대로 과세하거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의 '권리장전'을 국왕에게 승인받아요. 국왕의 권력을 법으로 제한한 거예요. 근대적인 의회정치 체제를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갖추게 된 겁니다. 이런 영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상원은 세습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로, 하원은 지주와 상인, 시민 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었죠.

영국 의회는 하원만 투표로 뽑았는데, 투표권은 당시 영국 성인 남성의 6분의 1도 안 되는 소수만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산업혁명으로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대거 이동하고, 공장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나요. 하지만 농촌 지역의 선거구는 그대로 유지되고 도시에는 선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 결과 유권자가 50명도 안 되는 농촌 지역 선거구에선 의원들이 선출됐고, 당시 맨체스터 같은 신흥 공업 도시들에선 의원이 나올 수 없었죠.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이 이뤄집니다. 불합리한 선거구 50개 이상을 없애고, 그 의석을 신흥 공업 도시들에 배정했어요. 그리고 1년에 토지 임대료와 주택 임대료로 일정 금액 이상을 내는 중산층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죠. 그러자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수 없는 현실에 불만을 갖게 돼요. 1838년부터 노동자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차티스트 운동'을 시작합니다. 차티스트 운동은 재산에 관계 없이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달라는 운동이었어요. 수많은 이가 차티스트 운동에 참여했지만 이들의 요구는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노동자들의 계속된 요구와 유럽 전체에 불어닥친 민주주의 움직임으로 1867년 2차 선거법 개정이 이뤄지고, 노동자들도 선거권을 갖게 됩니다. 이후 1884년의 3차 선거법 개정을 통해 농민들도 투표권을 얻게 돼요.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남성에게만 적용됐어요. 여전히 영국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죠. 영국 여성들도 투표권을 요구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해요. 그러다 1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남성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고, 여성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 일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1918년 4차 선거법 개정이 이뤄졌어요. 남편이 재산이 있거나, 자신이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이후 1928년 5차 선거법 개정을 통해 21세 이상 모든 남성과 여성이 투표권을 얻는 보통선거가 실시됐답니다.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