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평균 89개 단어 기억… 땀 냄새로 주인 기분 알아차려요
입력 : 2024.04.09 03:30
개가 사람 말을 이해하는 방법
눈치가 아닌 '단어'로 사람 말 이해해요
강형욱 동물훈련사가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했던 말 한마디가 반려인들을 당황시켰던 적이 있어요. 강 훈련사가 이 방송을 함께 보고 있을 개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겠다며 "산책 가자!"라고 말한 거예요. 이 소리를 들은 개들은 폴짝 뛰며 주인 주변을 빙빙 돌거나 목줄을 가져오는 등 제 나름대로 당장 나가자는 의사 표현을 했답니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거예요.
실제로 개들이 '단어'를 알아듣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 릴라 마갸리 교수와 헝가리 에오트보스 로랜드대 연구원팀이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이런 내용의 연구를 지난달 22일 발표했어요. 연구팀은 개 18마리의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붙인 후 장난감을 이용한 실험을 했어요. 개 주인이 장난감을 보여주고, 장난감 이름을 제대로 말한 경우와 그러지 않은 경우에 개의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살펴봤죠.
연구 결과, 공을 보여주면서 '공'이라고 말했을 때와 '원반' '목줄'이라고 말했을 때 뇌파 모양이 달랐어요. 특히 개가 잘 알고 있는 장난감을 정확한 이름으로 불렀을 때와 엉뚱하게 불렀을 때 뇌파 모양 차이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이런 반응을 보면 개가 단어를 이해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개는 어느 정도까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줄리아 피셔 연구원이 2004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보더콜리 '리코'의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어요. 당시 연구에 따르면 리코는 주인이 공과 인형 등 물건 200개가량을 말하는 대로 찾아왔다고 해요. 그런데 이 기록은 '체이서'라는 다른 보더콜리에 의해 깨졌어요. 체이서는 무려 명사 1022개를 기억하고 구별했죠.
리코와 체이서는 개 중에서도 특히 영리한 경우입니다. 캐나다 델하우시대 카트린 리브 연구원팀에 따르면 개들은 평균 단어 89개를 기억해요. 연구팀이 반려견 165마리를 실험한 결과, 최소 15개에서 최대 215개 단어에 반응했대요. 군용견이나 경찰견, 수색 구조견처럼 훈련 경험이 있는 개는 일반 개보다 1.5배 더 사람 말을 잘 이해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2022년 1월 국제 학술지 '응용동물행동과학'에 발표됐어요.
후각으로 스트레스 받은 사람 냄새 구별
개들은 단어만 잘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개는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주인의 기분이 달라졌음을 알아차리기도 하죠. 반려인들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반려견이 다가와 곁에 있어준다거나 핥아주는 등 위로를 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이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그러지 않을 때 나는 냄새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요. 우리 몸에서 땀이 분비되는 땀샘은 두 종류가 있어요. 에크린땀샘과 아포크린땀샘이에요. 에크린땀샘에서는 일상적인 체온조절을 위한 땀이, 아포크린땀샘에서는 식은땀처럼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기는 땀이 나옵니다. 아포크린땀샘에서 나오는 땀에는 지방과 세포 일부가 섞여 있어 에크린땀샘에서 나오는 땀과 다른 냄새가 나요. 개들은 사람보다 1만배 더 뛰어난 후각 능력으로 이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거예요.
개가 사람 땀 냄새를 구별하는 건 실제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됐어요. 2022년 9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에 관련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문제를 풀기 전과 후의 땀과 호흡을 각각 거즈에 묻혔어요. 그리고 문제를 풀면서 스트레스 받게 된 참가자의 땀과 호흡이 묻은 거즈를 개에게 구별하게 했죠. 놀랍게도 전체 실험 720회 가운데 개들이 스트레스 받은 사람의 거즈를 찾아낸 경우가 675회나 된다고 합니다.
사람은 개의 말을 이해할까
개는 사람 말을 잘 이해하는데, 사람은 어떨까요? 주인들은 대부분 반려견의 행동을 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해요. 반려견이 내는 소리나 행동을 보고 그 이유를 추측하죠. 개가 몸을 낮추고 으르렁거리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언가를 위협하려는 것으로 이해해요. 꼬리를 활기차게 흔들며 '끼잉 끼잉' 소리를 내면 매우 반가워한다는 걸로 아는 식이죠.
최근엔 동물이 내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공지능(AI)으로 번역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고양이 울음소리를 번역해주는 앱도 있어요. '미야오톡'이라는 앱인데, 다운로드 건수가 2000만건이 넘는답니다. 2억6000만건이 넘는 고양이 소리를 AI에 학습시켰대요. 개발자들은 고양이의 감정 상태를 맞히는 정확도가 70%라고 얘기하지만, 매번 '예뻐해달라' '사랑해요' 등 비슷한 내용만 나온다는 이용자들의 불만도 많다고 합니다.
미국 노던애리조나대의 콘 슬로보치코프 명예교수는 2018년 '줄링구아(Zoolingua)'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반려견의 소리와 표정, 몸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는 감정을 표현할 때 소리뿐만 아니라 귀와 꼬리, 몸짓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개의 다양한 표현 수단을 동시에 해석해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트업 '펫펄스랩'에서 AI 기반 음성 인식 기술을 활용해 개가 짖는 소리로 개의 감정 상태를 알려주는 기기를 발표해, 2021년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어요.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완성되고 더욱 개발된다면 반려견의 생각을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