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광부가 일하던 지하 1000m, '암흑 물질' 연구 실험실 됐죠

입력 : 2024.04.02 03:30

별별 과학 실험실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과학 실험실'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비커와 플라스크 같은 실험 도구들과 다양한 화학약품이 가득한 공간이 머릿속에 그려질 거예요. 그런데 혹시 실험실이 하늘이나 땅속에 있는 걸 생각해본 적 있나요? 하늘을 떠다니는 실험실, 깊은 땅속에 만들어진 실험실 말이에요. 거짓말 같겠지만, 이런 실험실들이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한답니다.

하늘을 나는 실험실, DC-8

여행 갈 때 타는 비행기가 과학 실험실로 변신한다면?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DC-8'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DC-8은 길이 약 48m의 대기 질 관측용 항공기예요. 13t(톤)에 달하는 관측 장비와 승무원 45명을 싣고 최대 12시간까지 비행할 수 있죠. NASA에서 1986년에 도입한 이 항공기는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대기 질을 분석해왔습니다.

보통 비행기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빽빽하게 설치돼 있지만 DC-8에는 다양한 과학 장비가 들어 있습니다. 미세 먼지를 감지하는 센서, 채집한 공기 샘플을 보관하는 캔 등이 있어요. 또 공기 샘플에서 찾아낸 물질의 질량과 농도, 성분을 분석하는 측정 기기도 있고요.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의 데이터를 내려받고 지상 관측소와 통신하는 통신 장비도 있죠. 공기 채집부터 분석까지 대기 질 연구의 모든 과정이 하늘을 나는 실험실에서 한 번에 이뤄지는 거예요.

지난 2월 하늘을 나는 실험실 DC-8이 우리나라를 찾아왔어요. 처음 우리나라 상공을 찾아왔던 2016년 이후 두 번째 방문이래요. 이번 방문은 한국 국립환경과학원과 NASA가 함께 진행하는 '아시아 대기 질 공동 조사'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DC-8은 지난 2월 19일부터 일주일가량 우리나라 상공을 비행했어요.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해 서울 성북구와 서대문구, 강서구를 거쳐 인천까지 비행하며 공기를 채집해 대기 질을 분석했답니다.

우리나라는 2~3월에 대기오염이 가장 심해요. 또 서해 쪽에 가까울수록 초미세 먼지 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데, 이 중 절반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오염 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오염 물질의 발생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과 NASA는 DC-8 연구 조사 결과를 분석해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랍니다.

강원 정선군 깊은 땅속 실험실, 예미랩

아주 깊은 땅속에도 실험실이 있어요. 바로 강원 정선군 예미산에 위치한 지하 실험실 '예미랩'이죠. 원래 이곳은 철광석을 캐는 광산이었어요. 그래서 광부들이 깊은 땅속에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갱도'가 있죠. 과학자들은 이런 이유로 지하 깊은 곳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실험실을 예미산에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과학자들이 지하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입니다. 암흑 물질은 우주의 85%를 차지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요. 정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죠. 다만 과학계에선 암흑 물질이 물질들을 뭉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렇게 뭉친 물질은 '별'로 성장하지요. 중성미자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예요. 지금까지 발견된 중성미자는 총 세 가지인데, 과학자들은 이보다 더 다양한 중성미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면 별의 탄생부터 우주의 기원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과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다른 물질과 충돌하면 나오는 '광자(빛 입자)'로 암흑 물질 존재를 파악해요. 중성미자도 여러 물질들이 붕괴하는 과정 등을 통해 특징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여러 입자와 방사선 등인 '우주선(宇宙線)'이 방해해요. 우주선의 방해를 최대한 안 받기 위해서 지하 실험실이 필요했던 겁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갱도를 따라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간 뒤, 수평 방향으로 터널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터널에 실험실을 여러 개 만들고, 실험 장비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설치된 장비로 사전 실험을 하고 있어요. 모든 실험실이 완성되면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랍니다.

사막과 화산 지대에는 화성 탐험 실험실

화성 이주를 꿈꾸는 과학자들은 화성에서의 생활을 미리 연습하기 위해 사막으로 향했어요. 지난 2018년 오만의 도파르 사막에 화성 탐사 기지가 만들어졌죠. 화성은 매우 건조해서 생명체가 살기 힘들어요. 도파르 사막도 최고기온이 51도까지 오를 정도로 뜨겁고 건조해, 동식물이 서식하기 힘들답니다. 화성과 환경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화성에 가지 않고도 화성에 있는 것처럼 활동하고 연구해볼 수 있는 거죠.

세계 25국에서 모인 과학자 200여 명이 이 실험에 참여했어요. 실험은 약 3주 동안 진행됐어요. 과학자들은 50㎏짜리 우주복을 입고 지질 레이더를 들고 화성을 탐사하듯 사막을 걸어다녔어요. 또 사막에 지은 별도 생활 공간에서 지구물리학과 우주 방사선, 통신 등과 관련된 과학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답니다.

'화산'도 화성에서의 상황을 모의로 실험하기에 좋은 장소예요. 화산 지대는 분출된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구성돼 있어요. 화성 표면도 기본적으로 현무암이에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미국 하와이의 화산 지대인 마우나로아산에 화성 탐사 모의 실험을 할 수 있는 돔 형태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과학자들은 2015년부터 1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실제 화성에 있는 것처럼 훈련했어요. 태양광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고 주변의 흙으로 토마토를 재배하기도 했죠. 화성에 홀로 남아 고군분투하던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생활을 미리 체험해 본 거랍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