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英·佛의 위대한 극작가… 끊임없이 각색되어 무대 올라요

입력 : 2024.03.25 03:30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희곡

연극 '알앤제이' 공연 장면.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 공연 장면. /쇼노트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현한 유명한 말이죠. 하지만 이는 여왕이 남긴 말이 아니랍니다. 1841년에 출판한 영국 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의 책 '영웅 숭배론'의 한 문장이 와전된 것입니다. "인도 제국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이죠.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업적을 칭송하는 글임은 분명합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몰리에르(1622~1673)가 있습니다.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이지요. 영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부른다면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셰익스피어와 비견할 만한 위대한 극작가로 손꼽혀요. 사회·정치 풍자성이 짙은 그의 작품들은 당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비극에 비해 과소평가됐던 희극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도 기록되고 있어요. 현재 프랑스 국립 극단 '코메디 프랑세즈'는 몰리에르가 만든 극단이 그 전신입니다.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 작품은 지금까지도 긴 생명력을 가지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데요, 두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 국내 무대에도 올랐습니다. 청춘과 사랑의 상징이자 비극적 운명을 대표하는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자 기숙 학교를 배경으로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 '알앤제이(R&J)'와, 몰리에르식 풍자와 유머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 '타르튀프'를 한국적으로 각색한 '위선자 탁 선생'을 만나볼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원수 집안으로 유명한 몬테규 가문의 로미오와 캐플릿 가문의 줄리엣이 무도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가문 사이에 벌어진 싸움으로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을 죽이고 줄리엣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를 강요받으면서 비극이 시작돼요. 줄리엣은 결혼식에 가지 않으려고 약물을 마시고 하룻밤 동안 죽은 듯이 잠들지만, 로미오는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마시지요.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 역시 로미오의 싸늘한 시체 옆에서 죽음을 택합니다.

1595년경에 초연한 것으로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실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작품이 아닙니다. 아서 브룩이 이탈리아 설화를 바탕으로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라는 서사시가 윌리엄 페인터의 '환희의 궁전'이라는 책에 재수록되는데, 셰익스피어는 여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착안하지요.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36편 중 많은 작품이 이처럼 당시에 이미 전해지던 작품을 관객 구미에 맞게 셰익스피어만의 양념을 더해 새롭게 버무려 낸 것이랍니다.

1997년 뉴욕에서 초연한 연극 '알앤제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에서는 2018년 초연한 이후 벌써 네 번째 무대이지요. 다음 달 28일까지 공연해요. 남자 기숙사 학교의 동급생인 네 소년은 유일한 일탈이 모두가 잠든 시간에 몰래 침대를 빠져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는 것이에요. 소년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점점 더 몰입하고, 배역을 맡아 연기까지 하죠. 이렇게 연극 '알앤제이'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극중극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숨 막힐 듯한 규칙과 통제에 얽매여 있는 십 대 소년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일탈과 욕망, 사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거침없음은 소년들이 바라는 자유의 상징으로 그려지지요.

연극 '위선자 탁 선생'의 원작 '타르튀프'는 1664년 몰리에르가 쓴 희극으로, '타르튀프'는 극 중 주인공 이름이에요. 프랑스에서는 '타르튀프'를 '위선자'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사용할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요. 파리 부르주아 오르공은 어느 날 타르튀프라는 청년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타르튀프의 배경이나 인격을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그를 성자로 떠받드는 오르공은 딸 마리안에게 약혼자가 있음에도 타르튀프와 결혼시키려 들지요. 하지만 타르튀프는 오르공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고, 오르공의 전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흉한 계획이 있었지만 결국 그의 본성이 밝혀지면서 막이 내립니다.

이 작품은 17세기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부패한 성직자들을 풍자하는 연극이었어요. 성직자들의 분노 속에서 공연 금지령까지 떨어질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요. 하지만 루이 14세의 암묵적인 비호 아래 1669년 다시 공연 허가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두지요.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공연한 '위선자 탁 선생'은 몰리에르 희극의 유머와 풍자를 한껏 살리는 대사와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위선자 탁 선생'이 끝나서 아쉬운 분들이라면 몰리에르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카팽의 간계'를 원작으로 한 연극 '스카팽'을 보면서 몰리에르 희극의 재미를 느껴봐도 좋겠어요. '스카팽'은 다음 달 12일부터 5월 6일까지 공연해요.

연극 '알앤제이'의 주인공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모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의 주인공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모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의 주인공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모습. /쇼노트
연극 '알앤제이'의 주인공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모습. /쇼노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위선자 탁 선생' 공연 장면.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