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지하수층·우물 71%, 20여년 전보다 수위 낮아져
입력 : 2024.03.19 03:30
지하수가 사라진다
- ▲ /그래픽=유재일
가뭄 잇따르는 지구… 물 사용 제한하기도
고틀란드 주 정부가 대회를 열어 못생긴 잔디밭을 칭찬하기 시작한 것은 재앙에 가까운 가뭄이 발생했던 2022년이라고 합니다. 대회를 통해 물 낭비를 막자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한 것이죠. 주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권에서는 집집마다 작더라도 정원을 가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정원에서 잔디를 가꾸려면 물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매일 최대 10㎜ 정도 강우량에 해당하는 물이 필요하다고 해요. 우리나라 평균 연 강수량이 1306㎜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물의 양입니다. 주 정부는 이를 절약하자는 것입니다.
잔디밭에 주는 물을 줄이려는 시도는 고틀란드에서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2022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일부 남부 지역에 대해 야외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를 1~2회로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대도시인 LA에서는 야외 물 사용은 주 2회, 스프링클러 가동은 8분으로 제한됐습니다. 위반하면 과태료 최대 600달러(약 80만원)를 내야 했죠. 캘리포니아는 3년간 가뭄으로 고지대·저수지에 물이 대폭 줄어 이런 절약 조치라도 취해야 했던 겁니다. 같은 해 8월 프랑스에서도 폭염으로 송수관이 말라 트럭으로 물을 실어 날라야 할 정도로 가뭄이 들어 관계 당국이 물 사용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지하수 더 빨리 고갈"
잔디를 가꾸지 못하게 막아야 할 정도로 물이 부족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비가 적게 내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땅에 물이 충분히 있다면, 물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정답은 땅속에 있는 지하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대부분의 물은 지하수입니다. 지구에 있는 물 전체 중 약 97.5%는 바닷물입니다. 남은 2.5%가 우리가 쓸 수 있는 담수 자원이죠. 그마저도 약 1.76%는 꽁꽁 언 빙하 형태로 있습니다. 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강물 자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수나 하천수가 전체 수자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0.01%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담수 약 0.7%는 모두 지하수 형태로 땅속에 저장돼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지하수를 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땅속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높이를 '지하수 수위'라고 하는데요, 지하수 사용이 크게 많아지면서 이 수위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하수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이 지하수를 꺼내 쓰는 속도가 비가 내려 지하수가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 지하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는 이대로 가다간 지하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죠. 지난 1월 스콧 야세코 미국 UC 샌타바버라 교수팀은 전 세계 40국에서 수집한 지하수 자료를 모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사람이 만든 우물 17만개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하수층 1700곳을 조사했더니 이 중 71%에서 2022년 수위가 2000년보다 낮아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지하수층 12%에서는 지하수 수위가 1년에 50㎝ 이상씩 급격하게 낮아지는 추세죠. 게다가 지하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2000년대에 들어서 더 빨라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산업화를 위해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개발한 데다, 기후 변화로 지하수의 근원이 되는 강수 패턴이 변하면서 지하수가 더 빨리 고갈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하수 사라진 자리에 땅 주저앉아 '싱크홀'
지하수가 고갈돼 사라진다면 단순히 사용할 물이 부족해지는 것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층 속 지하수가 흐르는 공간인 지하수층에서 지하수가 사라지면 공간이 고스란히 비게 됩니다. 이때 빈 공간으로 땅이 무너지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자주 나타나는 '땅 꺼짐' '지반 침하' 혹은 '싱크홀'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지하수 고갈이 해수면을 상승시키기도 합니다. 지구에 있는 전체 물의 양은 언제나 같기 때문에 지하수가 사라진다면 사라진 만큼 어딘가에 물의 양이 늘어나야 하죠. 지하수는 인간이 퍼올려 쓰고 버린 다음에는 결국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서기원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지하수 고갈과 해수면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1993~2010년 지하수를 약 2조1500t 퍼 올렸고 이로 인해 해수면은 6㎜ 정도 상승했다고 분석됐습니다.
해수면 변화는 '천문학적'인 영향도 미칩니다. 지구가 회전하는 도중에 약간 찌그러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회전축이 흔들릴 겁니다.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한 지하수는 지구 자전축을 80㎝ 정도 움직였다"고 말했습니다. 인류가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지하수가 지구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뜻입니다.
지하수 고갈로 인한 문제를 막으려면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은 2000년대 이후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는 속도가 줄었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 재배를 금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하수 사용을 줄인 덕분이었습니다. 못생긴 잔디밭 대회를 여는 고틀란드주도 대회 개최 후 물 소비량이 5%나 감소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