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부귀영화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조선 중기 한글로 쓴 '판타지 소설'

입력 : 2024.03.19 03:30

구운몽

구운몽 소설 내용을 그린 병풍. /한국민속박물관
구운몽 소설 내용을 그린 병풍. /한국민속박물관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비록 산속 깊은 절에 있다 해도 도를 이룰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근본을 잊지 않으면 속세에 푹 빠져도 마침내 돌아올 곳이 있다."

'구운몽'은 "중세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금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에요. 조선 중기 문신인 김만중(1637~1692)의 소설인데요,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갔을 때 어머니 윤씨의 근심을 덜어주고자 썼다고 해요. 효심이 깊었던 그는 어머니가 읽으실 수 있도록 한글로 썼대요.

주인공 성진은 신선 세계에 있는 절에서 수행에 매진하고 있어요. 스승인 육관 대사의 심부름을 다녀오던 성진은 돌다리 위에서 봄 경치를 즐기던 여덟 선녀와 마주치죠. 성진은 다리 지나가는 일을 두고 선녀들과 옥신각신 다퉈요. 성진은 복숭아 가지를 던져 구슬로 바꾸는 묘기를 보여주며 길을 터서 절로 돌아와요. 육관 대사는 수행 중에 여인들과 장난을 친 것은 적절치 않다며 성진을 꾸짖고 지옥으로 쫓아내요. 마찬가지로 여덟 선녀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을 다스리던 염라대왕은 성진과 여덟 선녀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기로 해요.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진한 양소유는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면서 승승장구했어요. 반역을 일으킨 토호들의 난을 평정하고 전쟁에 나가 무공을 세우기까지 했어요. 오늘날 국무총리와 비슷한 승상 벼슬에 올랐고 황제는 양소유를 마음에 들어 하며 사위로 삼았어요. 양소유는 인간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갖게 된 셈이죠.

재미있게도 양소유가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는 사이사이 환생한 여덟 선녀와 인연을 맺어요. 여덟 선녀도 각각 진채봉,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적경홍, 난양공주, 심요연, 백능파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거든요. 15세에 과거를 보러 가던 중에는 진채봉을 만나 혼인을 하고, 이듬해 다시 과거에 응시하러 가는 길에는 기생 계섬월과 만나죠. 역모를 토벌하러 갔다가 적진에서 보낸 자객 심요연을 만나고, 용왕의 딸 백능파를 도와주기도 해요. 양소유는 여덟 명 여성 모두의 마음을 얻고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해요. 결국 양소유는 온갖 즐거움을 다 누리며 살았어요.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나이가 든 양소유는 옛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지나가다가 부귀영화를 다 누린 자신의 인생도 저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허탈함을 느껴요. 그때 꿈에서 깨는데 바로 육관 대사 앞이었죠. 성진의 꿈은 깨달음을 주려는 육관 대사의 뜻이었어요. '구운몽'은 요즘 말로 하면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대담한 스토리와 치밀한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하는 고전 중 고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동석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