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오밀조밀 그린 선 물결치고, 도형 비율 바꾸면 입체로 보여
입력 : 2024.03.18 03:30
착시 미술
- ▲ 작품1 - 영국 화가 브리짓 라일리가 1967년 그린 작품 ‘폭포3’. /영국문화원
이런 효과는 눈의 착시 현상을 활용한 것입니다. '착시(optical illusion)'란 눈이 착각을 일으켜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보는 것을 뜻해요. 우리는 평소 옷을 입을 때도 옷의 선과 색 등 여러 시각 요소가 일으키는 착시를 활용해 신체의 장점은 강조하고 불만스러운 부분은 보완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도 활용한 착시 효과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눈으로 보는 결과물을 내는 이들은 착시를 염두에 두면서 창작합니다. 감상자는 자기 눈에 비친 모습을 실제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고대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이 수직선이 아니에요. 기둥 가운데 부분이 위와 아래에 비해 부풀어 있습니다. 직선으로 이뤄진 기둥을 여러개 세우고 멀리서 보면 기둥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게 휘어 보여요. 즉, '착시'가 생겨서 건물이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기둥 중앙 부분을 불룩하게 만들었어요. 감상자가 신전 기둥을 수직선으로 볼 수 있도록 착시를 고려해 건축한 것이죠.
1960년대 유럽 미술계에 착시로 인한 허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미술가들이 나타났어요. 그들이 소개한 미술을 옵아트(Op Art)라고 불러요. 대표적인 옵아트 미술가로 헝가리 출신 빅토르 바자렐리(1906~1997), 베네수엘라의 헤수스 소토(1923~2005), 영국의 브리짓 라일리(1931~)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바자렐리의 작품을 다음 달 2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직접 만날 수 있어요. 옵아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오밀조밀 그린 물결선… 그림이 물결치는듯
<작품1>을 보세요. 울렁거리는 율동이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지된 한순간을 포착해 담아내는 과거 미술과는 전혀 다른 시도였죠. 라일리가 그린 작품이에요. 움직이지 않는 그림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입혔어요. 물결 같은 선들을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려서 착시 효과를 줬어요. 우리 눈이 선 하나하나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움직인다는 착시를 일으키는 거죠.
<작품2>와 <작품3>을 볼까요? 바자렐리의 그림이에요. 그는 격자형 틀에 원이나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도형을 가득 채워 넣었어요. 비율에 맞추어 크기가 달라지도록 정교하게 계산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품2는 가운데 화면이 확장되면서 불룩 솟아오르고, 작품3은 경사진 아래쪽으로 꺼져 들어가는 식으로 서서히 변하는 듯하죠?
바자렐리의 기하학적 그림은 수학적인 규칙성과 정확성을 지녔어요. 모서리 하나라도 대충 그리는 법이 없었죠. 오늘날이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쉽게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예술계에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바자렐리는 직접 밑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섬세하게 칠해 작품을 완성했어요.
빨강은 튀어나오고 파랑은 깊숙이 숨어
지금까지는 규칙적인 선이나 도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착시를 살펴봤어요. 그런데 색깔의 대비도 착시를 일으키는 요인이랍니다. 방에 똑같은 모양의 빨간색과 파란색 의자를 놓아두면 빨간색 의자가 파란색 의자보다 더 커 보이고 앞으로 나와 보이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빨강, 주황, 노랑처럼 선명하고 따스한 느낌의 색은 크거나 튀어나와 보이는 '진출색'이고, 파랑과 초록은 상대적으로 작고 깊숙이 들어가 있는 듯 보이는 '후퇴색'이기 때문이에요.
<작품4>는 바자렐리가 착시를 일으키도록 색채를 구성한 그림이에요. 먼저 다양한 크기의 격자 칸을 만들고, 그 안에 사각형이나 원 등 도형을 배치했죠. 격자의 바탕색과 도형 안쪽 색이 달라 대비를 이루네요. 연두색 바탕에 노란색 원, 파란 바탕에 오렌지색 사각형,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원 등이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배치한 여러 도형을 멀리서 전체를 감상하면 도형마다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것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요.
바자렐리가 그린 격자형 색채 그림은 컴퓨터의 '픽셀(이미지를 이루는 최소 단위)'을 떠오르게 해요. 어떤 이미지든 컴퓨터에서 확대해서 보면 여러 색 픽셀들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움직임과 입체감의 착시 현상을 다루었던 옵아트는 훗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미술인 '디지털 미술'이 탄생하는 발판이 됩니다. 입체(3D) 영화나 가상현실(VR) 게임도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착시 효과와 관련이 있답니다.
- ▲ 작품2 - 헝가리 출생 화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1980년작 ‘키크(Keek)’. /바자렐리미술관
- ▲ 작품3 - 바자렐리의 1973~1974년작 ‘스트리-퍼(Stri-Per)’. /바자렐리미술관
- ▲ 작품4 - 바자렐리의 작품 ‘마르상-2(Marsan-2)’의 일부분. 1964년 그리기 시작해 1974년 완성했어요. 1955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르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르 무브망(Le Mouvement)’에서 이런 착시 미술 즉 ‘옵 아트(Op Art)’가 싹튼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전시 이름은 불어로 ‘움직임’이라는 뜻인데요, 바자렐리를 비롯해 헤수스 소토 등 미술가들이 이 전시에 참여해 각자 자기 방식으로 그림과 조각에 ‘움직임’을 담아내려고 시도했습니다. /바자렐리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