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격변의 근대기 종각, 한옥 마을 안국… 역 주변 곳곳에 숨은 사연 찾아봐요
입력 : 2024.03.11 03:30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
박은주 지음|출판사 미디어샘|가격 1만7800원
박은주 지음|출판사 미디어샘|가격 1만7800원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얽혀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구석구석 풀어내는 역사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교육·역사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PD예요. 역사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해 증언을 듣고 이를 보충 설명하는 전문가 견해를 더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썼어요. 역사적 사건을 단순 나열하는 게 아니라 더욱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죠. 책에서 소개하는 장소는 모두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걸어서 가기 좋은 곳이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우리가 자주 방문하는 곳 근처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간직한 지하철 정류장 17곳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공평 도시 유적 전시관'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 출구 근방에 있어요. 조선 한양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경성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중심에 있던 종로의 골목길과 건물터 등 유적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곳이에요. 종로 일대를 재개발하다가 유적이 발견되면서 공사를 중단하고 전시관으로 만들었어요.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가볼까요. 한옥 마을로 유명한 북촌이 나타나죠. 이곳은 1898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 인권 선언서를 발표한 곳이랍니다. 양반가 규수를 비롯해 기생 등 당시 여성 400여 명이 모였다고 해요.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2㎞ 떨어진 곳에는 어두운 일제강점기를 문학으로 밝히던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죠.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을 빠져나와 뒷골목으로 걷다 보면 1847년부터 무려 18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춘원당한의원을 만날 수 있어요. 그 옆에 지어진 춘원당한의약박물관에서는 통창을 뚫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약방에서 한약과 함께 우여곡절을 이겨온 근현대사를 느껴볼 수 있죠. 지하철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로 나와 가산동 뒷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면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이 있습니다. 구로공단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하며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주축들이죠. 특히 이곳에서 1970년대 식모살이를 하거나 버스 안내양으로서 가족을 부양했던 여성들의 증언을 귀 기울여 들어봅니다.
이처럼 지하철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역사의 현장으로 이동하는 통로입니다. 책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배우면서 서울을 비롯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껴볼 기회예요. 또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면서 우리 미래를 더욱 단단하고 현명하게 설계해 나갈 수 있겠죠.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오늘의 역사를 쌓아가는 주인공이지요.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는 다른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지하철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