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책장 넘기면 동물들이 '짠'하고 등장… 인간 때문에 멸종되는 이야기 들려줘

입력 : 2024.03.07 03:30
[재밌다, 이 책!] 책장 넘기면 동물들이 '짠'하고 등장… 인간 때문에 멸종되는 이야기 들려줘
이상한 구십구

이예숙 지음|출판사 아트앤팝업|가격 3만3000원

그림책 속 여기저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요. 그리고 모든 페이지가 양쪽으로 붙어 있어 책을 펼치면 마치 병풍처럼 길게 세울 수도 있어요. 모양이 복잡하고도 특이한 그림책이죠. 그런데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어요.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숲속을 헤치며 걸어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예를 들어 숲속 무성한 나무 잎사귀 그림에 뚫려 있는 구멍 너머로 오랑우탄이 숨어 우리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죠. 눈만 빼꼼 내놓고 있어 더 궁금하네요. 책장을 넘겨 그 뒷면을 보면 숨어 있던 오랑우탄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책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지죠. 독서가 탐험하는 느낌을 고스란히 구현하는 거예요.

책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할 수도 있겠죠. 책을 좌우로 길게 모두 펼쳐 벽 앞에 세워놓고 플래시를 비춰보는 거예요. 플래시 각도에 따라 벽에 다양한 그림자를 만드는 '그림자 놀이'를 할 수 있죠. 또 이어진 책장을 바닥에 'ㄷ'이나 'ㄹ' 자로 구부려 세우고 여러 각도에서 구멍 너머를 내다보면서 숲속의 새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동물들의 위치가 여기저기 옮겨질 수도 있고요. 책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만의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이 책을 쓰고 그린 이예숙 작가는 팝업북 분야 전문가예요. '팝업북 (pop up book)'이란 책장을 폈을 때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책을 말해요. 그림책에 흥미롭고 특별한 기능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죠. 그러나 만들기가 엄청나게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제작이 저조했답니다. 그렇지만 이예숙 작가는 우리 정서에 딱 맞게 팝업북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그림책을 활용한 공연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어요. 그는 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펴내고 있어요.

이 책도 역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작가는 동물들 말을 우리에게 들려줘요 "안녕, 난 검은코뿔소야. 내 뿔을 가지려는 사람들 때문에 심각한 멸종 위기 동물이 됐어." 기린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줘요. "언제부턴가 아프리카 대륙에 커다란 도로와 기름 통로가 생겼어. 우리가 사는 곳은 점점 줄어들었지. 그리고 우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우리나라에 사는 반달가슴곰도 등장해요. "난 겨울잠을 자면서 출산을 해. 내 쓸개를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은 많이 사라졌어." 담담한 표정과 말투지만 배 속의 쓸개를 빼앗긴다니 반달가슴곰이 볼 때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네요. 이 동물 친구들을 과연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우리는 놀라운 장면을 만날 수 있어요. 이리저리 커다랗고 어지러운 모양으로 뚫려 있던 구멍들, 책을 읽는 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 구멍들이 모두 포개지면서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것은 바로 사람 모습이에요. 그리고 여기엔 글자가 단 하나 적혀 있네요. "나!"라고 말이에요.
김성신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