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마왕이 시키는 대로 살았던 주인공… 이젠 넘어져도 '나만의 춤' 춰요

입력 : 2024.02.29 03:30
[재밌다, 이 책!] 마왕이 시키는 대로 살았던 주인공… 이젠 넘어져도 '나만의 춤' 춰요
고요의 집

이요 지음 | 출판사 구름속의페페 | 가격 2만2000원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얇은 한지 세 장을 겹쳐 두껍게 만든 종이 '삼합 장지' 위에 먹을 칠하는 방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먹칠은 종이 깊숙이 스며들며 번져요. 부드러우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표현했어요.

"고요, 네가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어?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마. '춤추는 왕관'이 시키는 대로만 춤춰." 하얗고 긴 망토를 입은 마왕이 주인공 고요에게 명령해요. 망토 마왕은 고요의 마음 깊은 곳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존재랍니다.

고요는 집 안에 머무르며 마왕의 말을 듣고 있어요. 왜 그런 부정적인 존재에게 귀 기울이는 걸까요? 고요는 어둠이 두렵기 때문이에요. 바깥세상에 나가 밤이 찾아온다면 어둠을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마왕이 시키는 대로 집에서 조그만 불을 켜고 있기로 해요. 고요는 춤추는 감옥에서 황금빛 춤추는 왕관을 쓰고 춤을 춰요. 그러면 수치스럽게 넘어지는 일도 없을 거라고 마왕은 약속했어요. 고요에게 집은 가장 안전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가두는 감옥이에요. 집 안에 갇힌 고요는 마왕에게 생각과 감정을 통제당하며 본래 자기 모습을 잊은 채 살아가요.

어느 날 고요의 눈앞에 '작은 빛' 하나가 나타났어요. 그 빛은 '빛 구름'이 되어 꿈속을 밝혀줬어요. 이윽고 새벽이 오네요. 마왕이 걸었던 어둠의 마법이 풀리기 시작해요. 작은 새의 노랫소리에 잠들었던 고요가 깨어났죠. "고요, 밖은 위험해…." 마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요. 그러나 고요는 밖으로 나섰어요. 쏟아지는 빛이 고요를 감싸안았고 고요는 한없이 평화로운 표정이에요. 더 이상 불안이나 두려움이 보이지 않아요.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마왕이 산산이 부서져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우리 집 앞에 바다가 있었어!" 고요의 눈앞에 처음으로 바다가 펼쳐졌어요.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요. 하늘 가득 눈부신 흰 구름이 고요를 반겨요. 꿈속에서 보았던 빛 구름 같기도 해요. 고요는 넘어지거나 창피를 당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해요.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해요. 마왕이 가르쳐 준 춤이 아니에요. 고요는 고요의 춤을 춰요.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바람과 발가락 사이의 모래가 태우는 간지럼을 도저히 참을 수 없네요. "하하하!" 고요는 큰 소리로 웃었어요. 이젠 캄캄한 밤이 와도 겁내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문이 고요를 향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들려요. '찰칵!'

어른들이 요구하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아이들이 노력하다가 좌절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종종 겪는 일이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전한 정신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허한 어른으로 자랄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해요. '나 자신'을 찾아가야만 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모험을 힘껏 응원하는 그림책입니다.
김성신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