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파티션·인체 공학 의자 최초 개발… 지금의 사무실 풍경 만든 주역이죠

입력 : 2024.02.20 03:30

가구 회사 '허먼 밀러'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 2005년 전시된 '에어론 의자'.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 2005년 전시된 '에어론 의자'. /브루클린 미술관
지난 1월 미국을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 허먼 밀러가 25년 만에 로고를 재정비했어요.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디자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전 로고에서는 원 안에 넣어 컴퓨터 아이콘처럼 처리했던 브랜드의 상징 '날아오르는 붉은색 M'은 다시 홀로 뒀어요. 예전처럼 다양한 그래픽 요소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한 거죠. 서체 또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체인 '헬베티카'를 일부 고쳐 사용했어요. 그림과 서체 모두 1968년 로고와 비슷하게 고친 거예요. 약 60년 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죠. 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허먼 밀러는 미국 가구사에서 무척 특별한 존재입니다. 허먼 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50~1960년대 '미드 센추리 모던'을 이끌었어요. 당시 미국 중산층의 취향에 부응한 새로운 주거 디자인을 말하는데요, 실용성을 중시한 깔끔한 디자인에 합판, 유리섬유,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신소재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에요. 허먼 밀러는 미국 모더니즘 디자인계의 주축이었던 조지 넬슨을 디자인 총괄자로 임명하고 자율권을 보장했어요. 덕분에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쏟아낼 수 있었죠.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타 디자이너로 꼽히는 찰스 & 레이 임스 부부도 허먼 밀러를 통해 수많은 걸작을 내놓았어요. 나무 합판을 인체공학적으로 휘어지게 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설계한 '임스 라운지 체어 우드(LCW)'는 집집마다 있는 필수품으로 등극했어요.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를 '20세기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기도 했죠. 신소재인 유리섬유를 활용해 의자 상부를 일체형으로 만든 '셸 체어'는 생산 비용을 줄이면서도 파격적인 디자인 구조를 채택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허먼 밀러는 사무실 디자인도 바꿨어요. 1960년 자체 연구소를 세우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 사무실 구조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 정보가 이동하는 방식 등을 연구했죠. 1964년 발표한 '액션 오피스'는 고정된 벽 대신 이동식 파티션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유연하게 사무실 구조를 바꾸는 아이디어였죠. 1968년의 흥행으로 일부 단점을 개선한 '액션 오피스 2'가 전 세계 사무실 풍경을 바꿨어요. 지금도 흔한 칸막이 구조가 그 유산이랍니다.

요즘 허먼 밀러는 1994년 내놓은 '에어론 의자'로 잘 알려져 있죠. 1976년 정형외과 의사와 혈관 전문가 등이 사람이 앉는 행동을 데이터 분석해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한 '에르곤 의자'를 더욱 개선한 것인데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요.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열렬히 환영하면서 '닷컴 의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에어론 체어 도입 여부가 회사 복지의 척도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할 정도로 좋은 의자의 상징이 됐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