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오스만의 미켈란젤로' 불린 건축가… 모스크 92곳 포함 374곳 설계했죠

입력 : 2024.01.30 03:30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이 1574년 지은 ‘셀리미예 모스크’. 장대하고 아름다운 외형과 공학적인 안정성에서 결국 아야 소피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아요. /위키피디아
미마르 시난이 1574년 지은 ‘셀리미예 모스크’. 장대하고 아름다운 외형과 공학적인 안정성에서 결국 아야 소피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아요. /위키피디아
지난 15일부터 튀르키예 정부는 이스탄불의 명물 '아야 소피아'를 찾는 관광객에게 입장료 25유로(약 3만6000원)를 부과해요. 아야 소피아는 537년 비잔틴제국 때 동방정교회(기독교의 한 분파)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1453년 오스만제국 점령 이후 모스크(이슬람교 사원)로 바뀌었어요. 1935년부터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한 이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렸답니다. 지난 2020년 튀르키예 정부가 종교 시설인 모스크로 변경하며 입장료를 폐지했는데, 이번에 3년여 만에 부활한 겁니다.

거대한 돔을 지닌 아야 소피아에 영향을 받아 그에 필적하는 모스크를 처음 만든 주인공이 오스만제국의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1489~1588)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그를 두고 '오스만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렀어요. 시난은 동방정교회를 믿던 그리스인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이슬람교로 개종해 오스만 군대에서 요새 등 군사 시설을 만들며 건축 경험을 쌓았어요. 1539년 수석 궁정 건축가로 임명되면서 약 50년 동안 각종 공공시설 설계를 주도해요. 모스크 92곳을 포함해 최소 374곳을 지었다고 해요.

시난은 오스만제국에서 유행한 종교 복합 단지 '퀼리예'의 전형을 만들었어요. 퀼리예는 모스크 주위에 학교, 목욕탕, 빈민 구제소, 병원 등 생활 시설을 함께 지은 복합 단지예요. 퀼리예의 본격적인 시발점은 1548년 시난이 지은 '셰흐자데 모스크'입니다. 기도실 건물 외벽에 돔을 바로 올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내부 기둥 4개로 돔 지붕을 지지하며 건물의 안정성을 높였어요. 덕분에 외벽이 얇아지고, 창문이 늘어나자 더 많은 빛이 내부를 밝혔죠. 안뜰에는 복합 시설을 뒀고, 두 시설을 분리하기 위해 기도실과의 경계 양끝에는 높은 첨탑을 세웠고요. 시난의 디자인은 19세기까지 제국 곳곳에서 반복됐답니다.

1550년 시난은 '술레마니예 모스크'를 지어요.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가 의뢰해 지었는데, 그 장대한 모습이 일품이에요. 이스탄불 언덕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당시 대제의 권세를 알 수 있답니다. 시난은 모스크에서 모든 사람이 탁 트인 공간에서 기도할 수 있길 원했어요. 그래서 아야 소피아만큼 거대한 돔을 만들어 그 아래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려 했죠. 1574년 시난이 제국의 옛 수도인 에디르네에 완공한 '셀리미예 모스크'에서는 드디어 아야 소피아의 돔과 크기가 비등해졌습니다. 지지하는 기둥을 4개에서 8개를 늘려 안정성을 늘린 덕분이죠. 이 모스크는 장대하고 아름다운 외형과 공학적인 완결성 덕분에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