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60년대 미·소 우주경쟁 시절, 알루미늄 엮어 드레스 만들어
입력 : 2024.01.16 03:30
- ▲ 1964년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가 발표한 의상을 입은 패션 모델들. 당시 우주복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고 해요. /더패션북
미국 나사는 1969년 인류 최초로 인간이 달에 착륙한 '아폴로 계획'의 산실(産室)로 잘 알려졌는데요, 사실 이는 미국 정부가 1958년 다급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세운 기관이랍니다. 냉전 시대 라이벌이던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리며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거든요. 이때 미국도 소련과 우주 진출 경쟁에 나서기 위해 나사를 세운 것이죠.
소련은 1961년 인류 최초로 우주인을 실은 우주선 '보스토크 1호'도 성공했어요. 이에 질세라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로 세계 최초 유인 달 착륙을 해내죠.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우주로 향하게 되었어요. 바로 '우주 시대(Space Age)'의 개막인데요.
이른바 '우주 시대 디자인'에 가장 먼저 반응한 분야는 패션이에요. 앙드레 쿠레주,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 등은 1960년대 당시 고급 의상에서 쓰지 않던 특이한 요소를 활용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어요. 쿠레주는 우주비행사의 복장에서 영감을 받아 흰색과 금속 컬러를 조합한 디자인을 선보였죠. 액세서리도 금속, 플라스틱, PVC(폴리염화비닐) 등 생소한 소재로 만들었답니다. 라반은 아예 알루미늄 조각을 엮어 금속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 시대 여전사 의상을 디자인하며 은색과 반사 효과,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죠.
가구와 조명에서도 우주 시대 디자인이 휩쓸었습니다. 우주에는 없는 목재는 배제됐어요. 대신 새로운 산업 재료인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또 직선 없이 곡선만으로 획기적인 형태를 제시하면서 표면의 질감은 매끄럽게 디자인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의 에로 아르니오가 1963년 발표한 의자 '볼 체어'입니다. 강화 플라스틱으로 공 모양을 만들어 사선으로 단면을 잘라낸 모습이에요. 그 안쪽엔 앉을 수 있는 푹신한 공간을 뒀어요. 우주선 조종석이나 달에 걸터앉는 듯한 느낌으로 큰 인기를 끌었죠.
조명 '에클리세'도 독보적입니다. 이탈리아의 비코 마지스트레티가 1967년 디자인했죠. 동그란 구형의 프레임에 광원을 넣고 내부의 방향 조절판을 돌리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요. 빛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돌리는 과정이 마치 개기일식 장면을 연상시키죠.
우주 시대 디자인은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잦아들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디자인은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원형으로 여전히 회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