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우리나라 첫 교과서 '국민소학독본'… 갑오개혁 결과물
입력 : 2024.01.11 03:30
교과서의 역사
- ▲ 지난 1945년 11월 2일 서울 경기중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 판서를 바라보며 수학 수업을 듣고 있어요. 광복 이후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교과서를 새로 편찬하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국사편찬위원회
국민교육의 시작과 교과서 편찬
교과서를 처음 만든 것은 20세기에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1894년 조선 정부는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신분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합니다. 사람을 더 이상 양반, 평민, 노비 등 신분으로 나눠 차별하지 않기로 한 것이죠. 정부는 "앞으로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선언합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려 있는 '국민교육'이 시작된 거죠.
1895년 지금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아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교육을 전담하는 행정 기구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지요. 그 전에는 교육은 예조라는 행정 기구가 하는 업무 중 하나일 뿐이었어요. 정부가 교육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어 국민교육을 맡을 새로운 학교도 정부 주도로 설립됩니다. 한성사범학교(1895), 외국어학교(1895), 소학교(1895) 등입니다. 정부는 각 학교에서 가르칠 교과목과 교육 내용을 제시하고, 학부아문에서 교과서를 만들도록 합니다.
우리나라 첫 교과서는 1895년 국어 교과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입니다. 정부 기관인 학부아문이 만들었으니 최초의 국정 교과서인 셈이죠. 그런데 이 책의 단원명을 보면, 내용의 범위가 국어 과목을 넘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을지문덕' 단원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메리카 발견' '칭기즈칸' 단원에서는 세계사 지식을, '식물 변화' '원소' 단원에서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다뤘습니다. 첫 국어 교과서에 이어 정부는 국사 교과서 '조선역사(朝鮮歷史)', 지리 교과서 '조선지지(朝鮮地誌)', 수학 교과서 '근이산술서(近易算術書)' 등 과목별 교과서를 발행합니다.
교과서로 '교육 구국'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국권 침탈을 본격화했어요. 이에 맞서 우리 지식인들은 구국(救國·나라를 구하는 것)을 위해 민중 교육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어요. 각지에 교육 구국 운동을 전개하는 교육 단체가 생겨났어요. 1904년 교육 단체 '국민교육회'는 "학교를 설립하고 문명적 학문에 부응할 서적을 편찬, 번역한다"는 취지를 밝히며 교과서 편찬에 앞장섰어요. 이어 호남학회(1907), 서북학회(1908), 기호흥학회(1908) 등 단체도 뒤따랐습니다.
이때 최초의 민간 검정 교과서 '유년필독(幼年必讀)'(1907)이 나왔습니다. 1906년 개교한 휘문고등학교가 자체적으로 인쇄한 민간 교과서입니다. 요즘 교과서처럼 정부 기관인 학부(학부아문의 후신)의 검정도 거쳤습니다. 유년필독이라는 이름은 '어린 아동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많이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리, 세계 사정을 소개하면서 일제의 침략 행위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1905년 우리 외교권이 일제에 넘어간 '을사늑약 체결'에 원통해하며 자결한 민영환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제는 이 책의 발매·반포를 금지했는데, 압수 서적 중 이 책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유년필독'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교과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이 책은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는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됐지만 한자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서 어린 학생들도 쉽게 소리 내 읽을 수 있었어요. 또 지금 교과서처럼 삽화도 실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했지요. 선생님들이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용 도서도 따로 갖춘 것까지 지금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교과서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광복, 교과서를 다시 우리 손으로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우리 교육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제가 외면했던 국어 교육과 국사 교육을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을 알리고, 또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선, 일제의 탄압하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국어 교육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봤어요. 불과 광복 3개월 만인 1945년 11월 6일, 임시 국어 교재인 '한글 첫 걸음'을 편찬했습니다. 일제 통치하에서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든 광복 후 첫 국어 교과서입니다. 한글이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하나의 음절을 이루는 원리를 다양한 단어를 사례로 설명했답니다.
광복 직후 최초 국사 교과서는 진단학회가 만들었습니다. 진단학회는 1946년 중등학교용 국사 교과서인 '국사교본(國史敎本)'을 편찬했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인이 서술한 첫 국사 교과서입니다. 시대별로 단원을 나눠, 상고(선사시대~삼국시대), 중고(신라 통일기~고려), 근세(조선), 최근세(1910~1945년) 총 4단원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최근세 단원은 내용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관련 내용과 한글 말살, 창씨개명, 전시 동원 등 일제의 강압 통치를 다뤘습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식민 통치가 끝난 것을 두고 "아! 얼마나 시원한 일이냐"며 통쾌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렇듯 일제에 말살되었던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되찾는 데 우리 힘으로 만든 교과서가 큰 역할을 했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접한 교과서는 우리 역사의 부침과 함께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른 겁니다.
- ▲ 1945년 11월 6일 광복 후 처음으로 나온 우리 교과서 '한글 첫 걸음'.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을 배우지 못했던 학생들을 위해 조선어학회가 서둘러 만든 임시 국어 교과서예요. /국립한글박물관
- ▲ 1895년 우리나라 첫 교과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 최초의 국정 교과서이자 첫 국어 교과서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1907년 우리나라 첫 민간 검정 교과서 '유년필독(幼年必讀)'. 휘문고의 전신인 휘문의숙에서 인쇄하고, 현재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에서 검정했어요. /교과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