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1219년 덴마크旗가 가장 오래… 사각형 아닌 건 네팔이 유일
입력 : 2024.01.10 03:30
국기의 역사
- ▲ 군인들이 한창 전투를 벌이던 중, 구름이 걷힌 하늘에서 덴마크 국기 '단네브로'가 내려오고 있어요. 1219년 6월 15일덴마크가 에스토니아를 상대로 싸울때 단네브로가 내려온 뒤 전세를 뒤집고 이겼다는 전설을 그린 덴마크 화가 크리스티안 로렌첸 그림이에요. /덴마크 국립미술관
우리 정부가 나서면서까지 태극기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이 일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국가 간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더 큰 잘못인 거죠. 태극 문양은 우주 만물의 음양 조화를 상징하며, 수세기 동안 한국의 전통 문양으로 썼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상징하기도 해요. 이런 문양을 잘못 그렸으니 우리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보인 거죠.
이렇듯 국기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깃발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록에 따르면 고대 남아시아 민족이나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처음에 깃발은 전쟁 때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용도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깃발이 나라의 귀중한 상징이 됐을까요? 국기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아봅시다.
덴마크 국기는 하늘에서 내려왔대요
현존하는 국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이 밝혀진 것은 덴마크의 국기인 '단네브로(Dannebrog)'입니다. '덴마크의 힘'이라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어요. 붉은색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새겨진 모양의 깃발인데요. 전설에 따르면 이 깃발이 1219년 6월 15일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재위 1202~1241년)가 이끄는 덴마크 군대가 비기독교 국가였던 에스토니아에 맞서 싸우던 '십자군 전쟁' 도중이었습니다. 덴마크군은 깃발에서 기독교와 십자군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발견하고 사기(士氣)가 올랐어요. 이어 덴마크가 전쟁을 이겼다네요. 이런 '단네브로 전설'에 따라 덴마크는 매년 6월 15일 나라 전역에서 단네브로를 게양하며 '깃발이 내려온 날'을 기념하고 있어요.
덴마크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11~13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 중에 흰색 십자가를 새긴 붉은 깃발을 자주 사용했답니다. 붉은색은 '전투'를, 흰색 십자가는 '신성한 대의(大義)'를 나타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깃발은 14세기 중반부터 덴마크 왕실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덴마크 국기로 자리 잡았어요. 덴마크 사람들은 국가 행사 말고도 생일, 크리스마스, 장례식 등 일상 곳곳에서 국기를 내걸 정도로 단네브로를 아낀다고 하네요.
'미국 땅' 하와이 깃발에도 영국 국기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은 오늘날 패션이나 문화 상품의 디자인으로도 많이 쓰일 정도로 인기가 있어요. 십자가와 'X' 자가 겹쳐져 있는 모양에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이 뒤섞인 국기입니다. 유니언 잭에는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여러 지역을 통합하면서 확장해온 역사가 담겼어요.
유니언 잭을 이해하려면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1세(1566~1625)가 잉글랜드 땅을 물려받던 16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이때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나라 '대브리튼 왕국(Great Britain)'을 만들면서 새 깃발을 만들었는데요, 이때는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하얀 바탕에 빨간 십자(十) 모양과 스코틀랜드를 나타내는 파란 바탕에 흰 X자 모양을 합친 모습이었답니다. 그러다 1801년 대브리튼 왕국은 북아일랜드 땅도 정식으로 복속했어요. 기존 깃발에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X자까지 더한 것이 바로 유니언 잭이랍니다. 영국인은 이 국기에 각각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를 수호하는 성(聖) 조지, 성 앤드루, 성 패트릭의 십자가가 합쳐졌다고 여겨요.
유니언 잭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의 국기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대표적으로 뉴질랜드, 호주, 피지 등입니다. 각 국기의 왼쪽 상단엔 공통으로 유니언 잭을 그려놓았죠. 특히 뉴질랜드는 1840년부터 1901년까지 아예 유니언 잭을 그대로 국기로 사용했어요. 그러나 영국의 유산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다른 식민지 국가처럼 유니언 잭을 조그맣게 표시하는 국기로 바꿨어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는데도 깃발에 유니언 잭을 포함한 대표 깃발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州)가 된 하와이지요. 1793년 영국 선장 조지 밴쿠버가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카메하메하 1세에게 '유니언 잭'이 새겨진 민간 깃발을 선물했는데요, 카메하메하는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니언 잭을 새긴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하와이의 여덟 군도를 상징하는 빨간색·흰색·파란색 줄무늬 8개를 더하며 오늘날의 하와이 주기(州旗)가 완성됐죠.
뒤늦게 디자인 '중복' 발견한 리히텐슈타인
세계 거의 모든 국기는 직사각형입니다. 그러나 네팔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삼각형이 위아래로 붙어 있는 독특한 모양이랍니다. 현재 네팔 국기는 1962년에 새 헌법에 따라 제정됐어요. 국기에 담긴 진홍색은 나라를 상징하는 꽃인 붉은 만병초색으로 네팔 국민의 용감한 정신을 상징한다고 해요. 파란색 테두리는 평화와 조화를 뜻합니다. 두 삼각형은 히말라야 산맥 또는 네팔의 주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를 나타냅니다. 깃발에 새겨진 태양과 달은 네팔이 해와 달만큼 오래갈 거라는 의미입니다. 네팔 국민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모양이지요.
국기 디자인이 다른 나라와 같음이 발견돼 국기를 변경한 경우도 있습니다. 1921년 리히텐슈타인은 새 헌법을 제정하면서 파란색 줄과 빨간색 줄로 구성된 깃발을 공식 국기로 지정했어요.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나가면서 국기가 아이티의 깃발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리히텐슈타인 정부는 공작 지위를 의미하는 왕관 디자인을 국기에 추가하기로 했답니다.
- ▲ 위부터 덴마크 국기, 네팔 국기, 영국 국기, 리히텐슈타인 국기. 일반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인 다른 국기와 달리, 네팔 국기는 독특하게도 삼각형 두 개가 붙어있는 뾰족뾰족한 모습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