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209m짜리 건물이 도시 경관 망쳤다" 신축 건물 높이, 37m 미만으로 제한
입력 : 2023.12.19 03:30
파리 고층건물 수난사
- ▲ '투르트라이앵글(tour Triangle)'이 들어섰을 때 예상도. /투르 트라이앵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거대한 철골 건물이 세워졌어요. 순수 높이만 300m로 당시 인간이 세운 건조물 중 세상에서 제일 높았던 에펠탑입니다. 당시 에펠탑은 혐오 대상이었어요. 엑스포가 끝나고 없애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안테나를 설치해 송신탑으로 살아남았어요.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 1층 식당을 자주 찾은 이유로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죠.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에펠탑의 수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파리에도 변화의 조짐이 찾아왔어요. 1960년대부터 현대적 건물을 조금씩 높게 세웠죠. 그러다 1973년 프랑스 최고층 건물로 몽파르나스 타워(209m)를 완공하자 파리 시민의 분노가 폭발했어요.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제 블록 등 자재를 날것 느낌 그대로 살린 거무칙칙한 모습이 오밀조밀하고 조화로운 파리 경관을 제대로 망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죽하면 '제2의 몽파르나스'를 막으려고 1977년 신축 건물 높이를 37m 미만으로 제한하는 건축 규정까지 만들었을까요.
이후 수십 년 동안 파리 시내에는 신축 고층 건물이 전무했답니다. 대신 도시 서쪽 경계면 바로 건너편 지역을 비즈니스 특화 지구 '라 데팡스(La Defense)'로 개발해 마천루를 모두 밀어 넣었죠. 퍼스트 타워(231m) 등 프랑스에서 제일 높은 초고층 건물 5개 중 4개가 여기 있어요.
그러던 2010년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경제 침체와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상업용 건물은 180m, 주거용 건물은 50m까지 높이 제한을 완화했어요. 덕분에 2017년 파리법원통합청사(160m), 2021년 초고층 쌍둥이 건물 듀오 타워(180m)가 파리 안에 생겼습니다.
하지만 파리 시민에게 제대로 밉보인 건물이 있었으니, 2026년 준공 예정인 '투르 트라이앵글(tour Triangle)'입니다. 피라미드 단면을 자른 듯한 180m 높이 유리 건물은 경제적 효과를 이유로 2008년부터 시 당국의 지지를 얻었어요. 2014년 시의회 투표에서 부결됐다가 이듬해 겨우 건축 승인을 받았죠. 그 뒤로는 디자인이 시의회에서 계속 반려되며 재판에 휘말렸어요. 결국 13년 만인 2021년 착공했습니다. 올해 6월 파리시는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계획에 따라 건축법을 1977년 때로 돌려놨답니다. 결국 다시 파리 시내에서 37m 이상의 건물 신축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