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45년째 동업 중인 동갑내기 소꿉친구… 낡은 런던 화력발전소, 미술관으로 바꿔

입력 : 2023.12.05 03:30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자크 헤르조그(왼쪽)와 피에르 드 뫼롱. /페이스북
자크 헤르조그(왼쪽)와 피에르 드 뫼롱. /페이스북
요즘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 사무소가 몰리고 있어요. 대규모 국제 설계 공모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에요. 해외 건축가를 지명해 초청하는 공모도 많고요.

스위스 바젤에 기반을 둔 글로벌 건축 사무소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HdM)' 또한 구애를 한몸에 받고 있답니다. HdM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1978년 함께 설립한 건축사무소예요. 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1950년생 동갑내기 소꿉친구로 스위스 건축 명문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을 함께 졸업한 후 지금까지 동업(同業) 중이에요. 굉장한 우정이죠. HdM을 이끄는 두 사람이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단 하나, 열린 마음입니다. 규모와 목적에 상관없이 모든 프로젝트에 동일한 관심을 두고, 건물을 짓는 장소와 목적, 그리고 이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구현합니다. 프로젝트에 맞춰 최적의 결과를 내기 때문에 개성이 없어 보이지만, 명확한 설계 목적과 구조,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결과물을 내놓죠. 스위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탔어요.

HdM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아마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일 거예요. 2000년 완공된 테이트 모던은 런던을 현대미술 중심지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건물로, 런던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낡은 화력발전소를 원형을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바꿨어요. 특히 발전소에 있던 터빈(원동기)을 모두 해체하고, 서쪽에 경사진 출입구를 만들어 광활한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한 터빈 홀이 상징적이에요. 5층 높이 대규모 설치 작업이 가능해 미술관 건축의 새 장을 열었어요. 거대한 발전소 굴뚝을 그대로 남긴 테이트 모던은 강 건너편 세인트 폴 대성당과 다리로 연결돼 런던 관광 지도를 바꿨어요. 오랜 기간 낙후됐던 인근 지역을 금융 지구로 뒤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알리안츠 아레나'도 유명합니다. 자체적으로 색을 바꿀 수 있는 에어 쿠션으로 외관을 처리한 독특한 경기장인데요. 이 경기장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단 두 곳의 상징색 빨강과 파랑을 활용해 오늘 어느 팀이 경기하는지 온 도시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국가체육장은 새가 머무는 나무 둥지처럼 얼기설기 가볍게 엮인 곡선이 인상적이에요. 정교한 계산을 기반으로 두꺼운 강철이 서로 교차하며 구조를 유지하는 공학의 산물이죠.

독일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는 화물 창고의 외형을 남기고, 그 위에 공연장·상업시설·호텔·주거시설 등을 망라한 복합시설을 세운 프로젝트예요. 제안부터 완공까지 무려 15년이 걸렸죠. 방문객은 창고 내부를 사선으로 통과하는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옛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만나는 층은 엘베강을 바라보는 전망대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요. 새로운 건물이 품고 있는 음악당 정중앙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모습이 인상적이죠.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