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흐뭇한 눈, 숭고한 눈, 슬픈 눈… 화가마다 달라요
입력 : 2023.12.04 03:30
눈 오는 풍경
- ▲ 작품1 - 이인문, '설중방우(雪中訪友)'. /국립중앙박물관
러시아나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비교적 눈이 많이 오는 나라의 화가들은 눈 오는 그림을 여러 점 남겼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눈 그림에는 저마다 다른 경험이 숨어 있어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해 볼까요?
눈 올 때 생각나는 사람
먼저 살펴볼 주제는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작품1〉은 눈이 오는 날 미끄러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친구의 집을 찾아간 선비를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 화가 이인문(1745~1821?)이 그린 그림으로, 눈 쌓인 날 두 선비가 방 안에 마주 앉은 모습이 보입니다. 한 사람은 집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그를 찾아온 친구랍니다. 집 바깥에는 하인들도 보입니다.
이인문의 그림 속 두 친구는 눈 오는 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본래 '설중방우(雪中訪友·눈 속에 벗을 방문하다)'라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서로 만나지 못해요. 오래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서예가 왕휘지는 눈이 오자 문득 벗 대규가 떠올라 작은 배로 밤새 그의 집까지 갑니다. 그러나 대규의 집 문을 두드리지 않고 마음을 바꾸어 돌아왔어요. 가는 동안 흥에 겨웠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
두 번째 주제는 눈 내리는 고요한 밤이에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나요? 〈작품2〉에서는 눈 내리는 밤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러시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마르크 샤갈(1887~1985)의 '푸른 날개가 달린 괘종시계'입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창문에서는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쉬지 못했던 괘종시계도 날개를 내려 접습니다. 시계 위로 혼자 눈을 뜨고 있는 닭이 보이네요.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다가 새벽이 오면 "꼬끼오" 하고 울면서 얼른 시계를 깨워 주려나 봅니다.
〈작품3〉도 고즈넉하게 시적 분위기가 감도는 밤눈 내리는 풍경이에요. 일본 에도 시대 판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가 그린 '간바라의 밤눈'입니다. 까맣던 밤이 눈으로 하얗게 밝혀진 모습입니다. 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려서 고요하던 마을이 한결 더 고요해졌죠. 1832년 우타가와는 공적 업무를 하는 관리 수행원을 따라 에도에서 교토 사이 도카이도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어요. 도중에 역참에 묵을 때마다 그는 경관을 스케치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스케치를 모아 판화집을 제작했어요. '간바라의 밤눈'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타가와의 작품은 유럽에 알려지며 많은 화가를 사로잡았어요.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도 우타가와의 판화 몇 점을 그대로 유화로 옮겨 그리기도 했답니다.
진지한 주제 담은 눈 그림
세 번째는 숭고(崇高·뜻이 높아 존경스러움)하면서 비감(悲感·슬픈 느낌)한 정서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작품4〉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눈 속의 묘지'예요. 눈으로 덮인 묘비가 흑백으로 강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앙상하게 가지를 그대로 드러낸 검은 나무가 강렬하고 극적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눈이 온 풍경이니 거의 색을 쓸 일이 없는데, 검은색을 사용해 더더욱 그렇습니다. 흑과 백으로 그린 풍경이 마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해 명상하게 만든답니다.
〈작품5〉도 숭고한 주제의 그림이에요. 조선 시대 문인화가 이인상(1710~1760)이 그린 '설송도'입니다. 화면 앞쪽에는 가지와 잎 위에 눈이 쌓인 소나무 한 그루가 곧고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뒤쪽의 다른 한 그루는 비스듬하게 휜 채로 서 있네요. 이 그림은 눈이 쌓인 효과가 잘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이인상은 그림을 그릴 때 쌀가루를 물에 타고 거기에 종이를 축여 다듬질하는 방식을 썼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종이 빛깔에서 새하얀 느낌이 오래간다고 합니다.
이인상은 높은 관직에 오를 실력은 충분했으나 신분적 제약을 받아 홀로 꿈만 꿀 뿐 뜻을 세상에 펼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몸은 병약한 편이었지만, 정신력만큼은 누구보다 강직했다고 해요. 그는 자기 신념에 따라 청렴하게 살고자 노년에는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고 지냈다고 해요. '설송도'는 고집스러우리만큼 곧고 도덕적인 이인상의 생애를 그대로 말해주는 그림이랍니다.
- ▲ 작품2 - 마르크 샤갈, '푸른 날개가 달린 괘종시계'. /위키아트
- ▲ 작품3 - 우타가와 히로시게, '간바라의 밤눈'. /일본 우키요에미술관
- ▲ 작품4 -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눈 속의 묘지'. /독일 라이프치히조형예술박물관
- ▲ 작품5 - 이인상, '설송도'.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