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가필드는 취임 120일 만에, 매킨리는 악수하다 저격당해
입력 : 2023.11.29 03:30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
- ▲ ①②③암살당한 미국 대통령(각 번호 작은 사진)과 암살 장면을 그린 삽화. 순서대로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④존 F 케네디 대통령(작은 사진). 큰 사진은 암살 직전 케네디 대통령과 부인 재클린 케네디(맨 뒷좌석)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미 의회도서관·백악관·브리태니커
공연 관람석에서 저격당한 링컨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암살된 인물은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입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잘 표현한 '게티즈버그 연설'과 노예 해방자로 아주 유명한 인물이죠. 19세기 미국 북부와 남부는 노예제를 두고 갈등하고 있었어요. 북부는 독립 후 상공업이 발달해 노예제를 폐지하기 시작했으나, 면화를 재배하는 대농장이 발달한 남부는 노예제를 그대로 유지했죠. 1860년 11월 노예제를 반대하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시작으로 남부 11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남부 연맹을 결성했습니다. 남부 연맹의 공격으로 미국에서는 내전(1861~1865)이 시작됐죠.
1863년 1월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전쟁도 북부에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를 열렬히 지지했던 배우 존 윌크스 부스는 '링컨 대통령 납치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1865년 4월 14일 저녁 링컨 대통령이 '우리 미국인 사촌'이란 공연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듣고 암살하기로 계획을 수정합니다. 부스는 연극 도중 링컨의 머리를 뒤에서 쏘고 도망갔어요. 링컨은 결국 4월 15일 아침, 56세 나이로 숨졌습니다. 4월 26일 부스는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농장 헛간에 숨어 있다가 총에 맞은 채 체포됐고 같은 날 사망했습니다.
총 맞은 지 80일 뒤 숨진 가필드
제임스 가필드(1831~1881)는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임기가 짧은 인물입니다. 대통령이 된 지 약 200일 만에 암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죠.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한 찰스 기토는 오랫동안 정신 질환을 앓았어요. 기토는 자신의 연설이 가필드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어요. 그는 백악관과 국무부를 방문해 외교관직을 요구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했죠. 기토는 복수심에 불타 가필드를 암살하고 체스터 아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해요.
기토는 가필드를 쫓아다니며 공격 기회를 엿보았죠. 그러던 1881년 7월 2일 가필드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워싱턴 볼티모어 앤드 포토맥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기토는 그를 향해 총을 쐈어요. 가필드는 총에 맞은 뒤 의사들의 치료를 받았어요. 하지만 당시 세균 감염에 대한 지식이 없던 의사들이 몸에 박힌 총알을 찾기 위해 상처를 마구 헤집었고, 가필드는 약 80일간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리다가 9월 19일 사망했습니다.
기토는 재판에서 "나는 대통령을 죽이지 않았다. 의사들이 죽였다. 나는 단지 그를 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는 결국 대통령을 저격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1882년 6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무정부주의자 총에 맞은 매킨리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1843 ~1901)는 보호 관세를 도입해 미국의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둔 인물입니다. 매킨리는 1901년 9월 6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열린 범미(汎美) 박람회에서 총에 맞았습니다. 1900년 재선에 성공한 매킨리는 이듬해 3월 취임 후 서부 지역을 순회하던 중이었어요. 범미 박람회 연설 전날인 9월 5일 수많은 지지자가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어요. 연설 당일 매킨리 대통령은 대중과 직접 악수하며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참모진이 대통령의 안전을 걱정해 말렸지만, 결국 매킨리는 일정대로 악수회에 참석했죠.
그때 한 남성이 매킨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매킨리의 가슴과 복부에 총알 두 발을 발사했어요. 매킨리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지만, 결국 9월 14일 사망했어요. 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매킨리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총을 쏜 사람은 레온 촐고츠라는 무정부주의자였어요. 그는 나중에 "나는 공화정체 정부를 믿지 않으며, 어떤 통치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1901년 10월 29일 촐고츠는 사형됐어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케네디 암살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일어났어요. 케네디 대통령은 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개방형 리무진을 타고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낮 12시 30분쯤 리무진이 딜리 광장을 돌아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를 지날 때 총성이 울렸어요. 미 해병대 출신 리 하비 오스왈드가 쏜 총알이었죠. 총알은 명중했고, 케네디는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상처가 너무 심각해 결국 사망에 이르렀어요. 그의 죽음으로 미국 국민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죠.
오스왈드는 공산주의 옹호자로 한때 소련에 망명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에요. 그는 케네디 암살 이틀 뒤인 11월 24일, 경찰서 이송 중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주인이 쏜 총을 맞고 사망해요. 그가 왜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죠.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미국 현대사에서 아직도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랍니다.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로널드 레이건(1911~2004) 대통령은 1981년 3월 30일 워싱턴DC 힐턴 호텔을 떠나던 중 존 힝클리 주니어가 쏜 총에 맞았어요. 배우 조디 포스터의 열렬한 팬이었던 힝클리는 대통령을 암살하면 포스터에게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고 해요. 다행히 레이건은 건강을 회복했고, 힝클리는 심신 장애를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힝클리는 정신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은 뒤 지난해 6월 모든 감시에서 풀려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