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낙타 혹·코뿔소 꼬리 요리한 淸… 프랑스 와인 인기 얻은 빈 회의
입력 : 2023.11.28 03:30
만찬과 연회
- ▲ 2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건배하고 있어요. /AP 연합뉴스
먼저 청나라 시기 중국에서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만찬이 굉장히 호사스러웠다고 합니다. 청나라 강희제가 만주족과 한족 노인 2800명을 궁궐로 초대해 사흘 동안 진귀한 음식을 먹고 즐겼던 만찬이에요. 말 그대로 만주족과 한족이 함께하는 자리였죠. 만찬에는 조류, 해산물, 육류, 야채류에서 각각 여덟 가지의 요리가 준비됩니다. 이때 제공된 진귀한 음식으로는 백조, 제비집, 상어 지느러미, 곰 발바닥, 낙타의 혹, 코뿔소 꼬리, 원숭이머리버섯이 있어요. 이렇게 화려한 만한전석에는 소수인 만주족이 다수의 한족을 다스릴 수 있도록 강한 통치 체제를 만들려는 강희제의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90왕국과 53공국이 참여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회의입니다.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각국 정상들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모여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변화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어요. 프랑스 혁명은 민중이 왕을 처형해 유럽 각국 왕조에 충격을 준 사건이고,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가 나폴레옹에게 영토를 빼앗기며 자존심을 구겼던 사건이죠. 그러나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며 엘바 섬에 유배를 가게 됐죠.
이후 오스트리아,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등 군주들이 모여 어떻게 유럽을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것인가 논의한 것이 바로 빈 회의입니다. 빈 회의는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는 소식에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유럽 영토와 정치 체제를 프랑스 혁명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복고적인 빈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빈 회의가 화려한 연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죠? 놀랍게도 빈 회의 기간 연회와 무도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고 합니다. 당시 회의에서는 영토와 관련된 문제들이 심각하게 다뤄졌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입장이 곤란해질 때면 메테르니히가 회의를 멈추고 연회와 무도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회의는 지지부진했지만, 연회는 자주 열려 '회의는 춤을 춘다. 그러나 회의 진전은 없다'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어요.
또 빈 회의 때 연회를 통해 프랑스산 와인이 인기를 얻었어요. 패전국 입장이던 프랑스는 샤토 오브리옹이라는 와인과 유명 프랑스 요리사 음식을 각국 대표들에게 제공하며 국익을 챙겼다고 하네요. 역사 속 화려한 만찬과 연회 속에는 이처럼 정치적인 뜻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