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美 1844년 전신망 첫 구축… 41년 뒤 우리나라에도 설치

입력 : 2023.11.21 03:30

전보

1918년 미국의 전보. /미국 국립우편박물관
1918년 미국의 전보. /미국 국립우편박물관
KT가 다음 달 15일부터 전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어요. 전화와 이메일,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즉각 연락이 가능한 요즘 시대에는 전보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수 있어요. 하지만 전보는 우편에 비해 빠르고, 전용 회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청 위험이 낮아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꽤 오래 이용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축전(祝電)을 보냈다'고 할 때 '축전'은 '축하 전보'를 줄인 말이죠. 전기를 이용해 신호를 주고받아 소통하는 전보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전보를 발명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우편이나 신호 전달 체계를 이용해 소식을 전달했어요. 하지만 우편은 배달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고, 봉화 등 신호 전달 체계는 비교적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있지만 상세한 내용을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 상용화 이전에는 전보와 비슷한 시스템을 활용했어요. 대표적으로 클로드 샤프(1763~1805)가 개발한 광학 신호기가 있습니다. 이 통신기는 시각 신호를 이용했어요. 중계탑에서 나무를 움직여 알파벳 문자를 가리키면, 먼 거리에서 이 신호를 받아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었어요. 망원경 등 멀리 볼 수 있는 기구를 발명한 뒤 가능해진 방법이었죠. 이러한 방식을 세마포어 통신이라 하는데, 밤이나 악천후에는 신호를 보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것이 전기 신호를 이용한 전신이었어요. 전신은 1844년 미국 워싱턴DC와 볼티모어 사이에 최초로 설치했는데, 당시 전신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 '모스 부호'로 유명한 새뮤얼 모스(1791~1872)였어요. 모스 전신기는 신호기를 눌러 길고 짧은 신호를 보낼 수 있었고, 이를 수신한 전신기에서 해당 신호를 종이 테이프에 자국을 남겨 출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신호 자국을 모스 부호에 따라 해독하면 신속하게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초기 전신은 철도를 운행할 때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쓰였어요. 이후 모스 전신기는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 세마포어 신호기와 전서구(傳書鳩·편지를 보낼 수 있게 훈련된 비둘기)를 대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885년 서울과 인천, 의주를 잇는 전신을 가설하면서 전보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전신으로 전근대적 봉수제와 역원제를 대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어요. 김학우가 한글 모스 부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제 침탈이 심해지며 전신 운영권이 일본에 넘어갔어요. 해방 이후에는 6·25 전쟁으로 전신망 구축이 늦어졌고, 1960년 이후 상용화됐습니다. 당시 전보는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글자 수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경제적이었죠. '쾌유를 기원합니다'를 '기쾌유(祈快癒)'로, '아버지가 너를 보러 서울에 가신다'를 '부친상경'으로 줄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