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세계 첫 '완전 개방형' 미술품 수장고… 건물 외관은 스테인리스 사발 닮았죠

입력 : 2023.11.21 03:30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디포 건물 외관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사발을 닮았어요.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디포 건물 외관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사발을 닮았어요.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
2028년 서울에 국내 최초 개방형 수장고가 생깁니다.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인근 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 일대에 들어설 예정으로, 소장품과 미술품 복원 과정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수장고가 들어서면 서울시가 보유한 문화예술 자원 약 45만점의 공개율을 5%에서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유럽 출장 중 방문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디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이하 디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디포는 로테르담에 있는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산하 수장고입니다. 1849년 설립 이래 네덜란드 최고 수준 컬렉션으로 유명한 이 미술관은 중세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회화·드로잉·조각·가구·오브제·사진·영상물 등 약 15만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건물 지하에 있는 주요 수장고가 침수 피해에 노출되면서 새로운 수장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20년 전부터 나왔다고 해요. 2013년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던 소장품 전체를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수장고 건설을 발표하며 혁신적인 콘셉트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일반적으로 미술관 수장고는 소장품 일부만 공개하거나, 관리자 통제하에 관람할 수 있어요. 반면 디포는 방문객이 자유롭게 수장고를 둘러볼 수 있는 세계 최초 '완전 개방형' 미술품 수장고였습니다.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의 설계안도 큰 화제였어요. 아래는 좁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사발 모양 형태는 이케아에서 파는 3.99유로짜리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그릇에서 직접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건물 외벽도 반사 유리 패널 1664장으로 감싸며 주변 풍경을 흡수하는 전위적인 디자인이었죠. 초현실적인 모습이 온갖 독특한 건축물로 가득한 건축 도시, 로테르담의 정체성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을 10% 정도로 축소하는 반사 유리가 문제였어요. 건물 바로 옆에 어린이 병원이 있어서 환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정신 질환 치료에 방해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죠. 결국 병원 쪽에는 가림막을 설치하고, 반사 유리 광택도 없앴어요. 이후 2017년 착공해 3년 만에 완공했고, 2021년 문을 열었습니다.

디포에 들어가면 35m 높이 중앙 홀을 중심으로 배치한 거대한 유리 진열장 13개와 그 사이로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인상적입니다. 7개 층에 분산된 20개 수장실은 재료에 따라 알맞은 온도와 습도 환경을 설정해 5가지 카테고리로 운영하고 있어요. 예컨대 컬러 사진은 실내 온도를 14도, 흑백사진은 7도로 유지하고 캔버스와 나무에 그린 페인팅은 20도, 습도 50%에서 보관하는 식입니다. 디포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전시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획전이 열리지도 않고, 작품마다 제목이 적혀 있지도 않죠. 대신 QR 코드를 통해 작품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 수 있어요. 걸어 다니면서 보는 모든 모습이 관람 대상입니다. 운이 좋으면 유리창 너머로 미술품을 복원하는 장면까지 구경할 수 있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