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제주 해녀 항일운동' 소재로 만든 소설… 물질 못하는 소녀도 일제에 맞서 싸워
입력 : 2023.11.09 03:30
해녀의 딸, 달리다
제주 북동쪽 구좌읍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 하도리는 해녀로 유명한 곳이에요. 오늘날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곳이 일제강점기 대규모 항일운동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라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 일은 '제주 해녀 항일운동'이라고도 하고, '하도리 해녀 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제주로 들어온 일본 자본가들은 해녀들이 채취한 감태와 전복을 강제로 헐값에 사들이려 했어요. 생활고를 겪게 되자 분노한 해녀들은 해녀 조합에 정상 매입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조합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죠.
이에 해녀들은 1931년 세화시장 장날에 대대적 시위를 감행했고, 이는 1932년 1월까지 이어졌어요. 연인원 1만7000여 명이나 참여한 대규모 항일운동이었죠. "미성년자와 노인의 조합비를 면제하라!" "일본인 악덕 상인과 내통하는 조합 서기를 처벌하라!" "비 오는 날 잡은 전복도 제값을 쳐줘라!" 당시 구호를 통해 해녀들이 처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 똑같은 전복도 비가 오는 날 잡았다는 어이없는 핑계로 제값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주인공 해인은 제주 하도리에 사는 소녀예요. 엄마도 해녀고 언니도 '아기 상군 해녀'예요. 해녀는 보통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따는 능력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눠요. 보통 상군은 10~20m, 중군은 7~8m, 하군은 3~5m까지 잠수해요. 그런데 주인공 해인이는 물질을 못해요.
어느 날 한 상군 해녀가 죽어 바닷가로 밀려왔어요. 일본인 순사는 이를 자살로 결론짓고 쉽게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이웃 해녀들은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제의 수탈은 아무리 일해도 살 수가 없을 정도로 만들어 해녀들의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죠. 하도리 젊은 해녀들은 계속되는 일제 착취에 대항해 야학에 모여 한글을 배우며 해녀 공동체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해녀들은 더 인내하거나 물러설 수 없음을 깨닫고, 세화 장터에 모여 본격 투쟁을 벌이기로 해요.
이 가운데 주인공 해인이는 늘 달리고 또 달려요. 그런데 이 달리기는 놀이가 아니에요. 해인이가 달릴 때 해녀들이 모이고, 해녀들이 일어서고, 해녀들이 함성을 질러요. 작가는 어린아이도 거대한 역사 흐름 한편에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해요.
2016년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해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직은 독특한 생활상과 풍경을 눈으로 보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요. 이현서 작가는 제주 해녀들이 만들어 온 오랜 세월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의 삶이 남긴 역사적 흔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기록으로 남겨 널리 알리자는 뜻을 담아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