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1920년대 초부터 조선은 '아인슈타인 붐'… 과학으로 나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죠
입력 : 2023.11.02 03:30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민태기 지음|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격 1만8500원
민태기 지음|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격 1만8500원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오래전 인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가 연구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물리학이 여전히 현대 과학계가 다루는 주요 주제이기 때문일 거예요. 반대로 일제강점기는 아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죠. 당시 풍경에 비하면 지금 우리 삶이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는 1905년이고, 일반상대성이론은 1916년 세상에 나왔어요. 이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해가 1921년이죠. 3·1운동이 일어난 해가 1919년이니까 불과 3년 전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일제강점기도 그리 오래전 역사는 아니네요.
누리호와 차세대 발사체 엔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 민태기 박사는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요. '과학 혁명이 이뤄지던 이 시기 우리 조상은 아인슈타인을 알았을까? 조선의 지식인은 양자역학을 공부했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저자는 당시 신문과 사료 등을 추적했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죠. 1920년대 초반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인슈타인의 연구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순회강연이 열렸고, 여기에 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는 연이어 새로운 과학을 다룬 기사가 실렸대요. 심지어 당시 최신 이론이었던 양자역학에도 조선 대중이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1922년 아인슈타인 부부가 일본 도쿄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우리 언론은 그의 방문 일정을 시시각각 보도했어요.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그리고 상세한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아인슈타인 붐'을 이끌었다고 해요. 한 달 넘게 이어진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은 엄청난 관심 속에서 진행됐고, 그때부터 조선 사회에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은 지식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으로 인식됐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아인슈타인에 이토록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나라를 잃은 유대인 출신이지만,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민족을 위해 대학을 세우며 후학을 양성했다는 이야기에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크게 감명받았다고 설명해요. 아인슈타인을 본받아 과학을 공부하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거죠.
당시 조선 과학자도 소개합니다. 상대성이론을 해설한 나경석, 독일에 가 아인슈타인을 만난 황진남, 천문학자 이원철, 물리학자 최규남, 육종학자 우장춘, 수학자 이임학, 양자화학자 이태규 등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자들의 행보와 업적을 알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가 패배감과 절망으로만 채워진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약을 준비한, 매우 역동적인 시대였다는 것을 저자는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