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조선 시대, 꽹과리·북 쳐서 왕에게 직접 호소했죠
입력 : 2023.10.31 03:30
청원
- ▲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사람들이 새로 복원된 광화문 월대를 둘러보고 있어요. /남강호 기자
광화문 월대를 설치하기 전에도 백성들은 격쟁(擊錚)이라는 청원 제도를 통해 왕에게 직접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격쟁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꽹과리나 징, 북 등을 쳐서 왕의 눈길을 끈 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호소하는 행위입니다. 격쟁은 글을 모르는 하층민도 억울한 점을 왕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었고, 횟수 제한도 없었기 때문에 빈번하게 이뤄졌다고 해요. 심지어 1790년(정조 14년) 한 백성은 산의 소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3년 동안 7번이나 격쟁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백성들이 격쟁으로 청원한 일은 주로 무엇이었을까요? 호소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지만, 격쟁을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1744년(영조 20년)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일' '아우가 형을 위하는 일'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에 대해서만 격쟁하도록 제한을 뒀어요. 격쟁 내용은 본처와 첩에 대한 문제나 신분에 대한 문제 등 유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내용으로 한정했습니다. 또 격쟁을 하려면 먼저 체포돼 의례적으로 곤장을 맞는 절차를 거쳐야 했죠. 이렇듯 조선의 격쟁은 백성이 국왕에게 직접 청원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신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호소할 수 있는 내용도 다양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왕의 강력한 권력 행사에 반대하는 청원이 이뤄졌어요. 바로 1628년 영국 의회가 찰스 1세의 전제정치를 제한하기 위해 제시한 '권리청원'입니다. 찰스 1세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의회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했고, 청교도를 탄압했으며, 군인을 일반인 집에 강제로 숙박시키는 등 전제정치를 했어요. 참다못한 영국 의회는 국왕이 의회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으며, 불법 체포와 구금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권리청원을 찰스 1세에게 제출했습니다.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의회 협조가 필요했던 찰스 1세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승인했죠. 하지만 찰스 1세는 권리청원 내용을 잘 지키지 않았고, 결국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전제정치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이어져, 과거에는 왕에게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큰 각오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곤장을 맞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다양한 방법으로 청원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