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일제 때 '민족 시인' 산업화 때 '국민 시인' 수식어 떼고 詩 읽어야 진짜 의미 보여요

입력 : 2023.10.26 03:30

청소년에게 시인이 읽어 주는 시인의 얼굴

[재밌다, 이 책!] 일제 때 '민족 시인' 산업화 때 '국민 시인' 수식어 떼고 詩 읽어야 진짜 의미 보여요
이민호 지음|출판사 북치는소년가격 1만5000원

친구에게 '너는 참 감성적이야'라고 말해 준다면, 모두 좋아할 거예요. 따뜻하고 섬세하며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테니까요. 시를 읽을 때도 '이 시는 참 감성적이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시를 즐겨 쓰는 시인에게 '감성 시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그런데 자신에게 이런 표현이 붙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시인도 있어요. '자신은 그냥 시인이고 싶지, 굳이 감성이라는 이름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말이죠. '감성'이라는 표현이 경우에 따라선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예요.

이와 비슷하게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시인을 기리기 위해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민족 시인'이나 '국민 시인' 같은 호칭이죠. 그러나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저자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해요. 시인 이름 앞에 붙은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시를 오해하게 만들거나 시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에요.

저자는 '민족 시인'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 민족에게 절실했던 호칭이라고 설명해요. 온 민족이 뭉쳐 식민 지배에 저항해야 했으니까요. 한편 '국민 시인'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요. 이 시기엔 우리 모두를 대표할 '아바타'가 필요했다고 저자는 설명하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우리는 이제 민족과 국민을 앞세우기보단 세계 속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들에게도 우리 시대에 맞는 평가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한 시대인 만큼 시인도 그렇게 다시 만나보자는 것이 이 책의 제안이에요.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이 저 높은 곳에 까마득하게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분들이라고 여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김소월의 시 두 편을 해설하는 대목도 무척 흥미로워요. 소월의 집안에 갓 시집 온 숙모 계희영은 어린 시절 마음 둘 곳 없던 소월을 따뜻하게 보살펴 줬고, 훗날 시인이 된 소월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됐다고 해요. 어린 시절 숙모가 들려준 우리나라 전설, 민담, 옛 노래 속 슬픈 이야기는 소월의 시로 그대로 옮겨 가기도 했대요.

저자는 소월의 시가 여성을 비주체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고 설명해요. '진달래꽃'과 '님의 노래' 마지막 구절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와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에서 알 수 있죠. 이 두 문장을 두고 저자는 임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견디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주체적 여성을 그렸다고 해석해요.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김소월의 시는 그저 슬프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상의 모습을 예견한 지혜로움도 있었네요. 익숙한 우리 시 문학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만드는 책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