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과일 잘 먹는 사향고양이… 팝콘 비슷한 냄새로 영역 표시해요

입력 : 2023.10.25 03:30

빈투롱

빈투롱은 곰·고양이 등 여러 동물을 닮았지만, 이들과 관련은 없대요.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
빈투롱은 곰·고양이 등 여러 동물을 닮았지만, 이들과 관련은 없대요.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
지난 2007년 밀거래 직전 구출돼 베트남 한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 지내온 '미스터 비'라는 이름의 빈투롱(binturong)이 이달 초 숨을 거둬 돌보던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대요. 센터에서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긴 수염을 한 '미스터 비'의 사진과 추모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어요. 인도차이나반도와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우거진 숲에 사는 빈투롱은 이 동물 저 동물을 다 섞어 놓은 것 같은 별난 모양새로 유명하답니다. 빈투롱이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대요. 처음 이름이 붙을 때 토착어가 지금은 소멸됐거든요.

다 자라면 몸길이가 1m, 꼬리 길이가 80㎝에 이르는 빈투롱의 또 다른 이름은 '곰고양이'라는 뜻의 '베어캣(bearcat)'이에요. 이름처럼 덥수룩하고 짙은 털이 곰을 닮았는데, 똘망똘망한 눈망울은 고양이 같아요. 어찌 보면 얼굴에 무늬가 없는 너구리 같기도 해요. 주로 나무에 살면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건 나무늘보를 연상시키죠. 하지만 이들 동물과는 어떤 연관도 없답니다.

빈투롱은 사향고양이의 한 종류예요. 사향고양이는 개·고양이·곰·족제비 등이 속한 육식동물 무리 식육류(食肉類)에 속하는데, 그중 가장 진화가 덜 된 무리예요. 지금부터 4000만~5000만 년 전 살았던 식육류 조상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대요.

사향고향이는 이름이 말해주듯 대체로 몸에서 사향(麝香)이라는 독특하고 강렬한 냄새를 풍겨요. 빈투롱의 냄새는 사람이 맡기에 그렇게 고약하지는 않고, 마치 버터를 넣고 튀긴 팝콘 비슷한 냄새가 난대요. 꼬리 아래에 있는 냄새샘에서 버터 팝콘 냄새를 풍기는데, 나무줄기나 나뭇가지를 이동할 때 기다란 꼬리를 질질 끌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냄새를 묻혀 영역 표시를 합니다.

빈투롱은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야행성이라서 사람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답니다. 기다란 꼬리는 나뭇가지나 나무줄기를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제법 튼튼하죠. 하지만 원숭이처럼 나무 사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정도로 몸이 날래지는 않아요. 그래서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할 때는 땅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죠.

많은 사향고향이들이 쥐·새·뱀·개구리 등을 사냥해 먹지만, 빈투롱은 고기보다 과일을 훨씬 많이 먹어요. 먹잇감이 없으면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동물 사체를 먹기도 해요. 주변 환경에 맞춰 초식동물에 가깝게 식습관이 적응한 거래요. 중국 대나무 숲에 사는 자이언트판다가 주로 댓잎과 죽순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숲속 식물에게 빈투롱은 아주 고마운 존재랍니다. 열매를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대변을 통해 씨를 멀리 퍼뜨려 주거든요.

빈투롱은 포유동물 중 드물게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가 20%가량 크답니다. 암컷은 번식할 때 수정란이 자궁에 자리 잡는 시기를 스스로 늦출 수 있어요. 새끼를 키우기 가장 알맞은 시기에 맞춰 임신과 출산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능력 덕에 별도로 짝짓기 철이 정해져 있지 않고, 1년 내내 번식이 가능하대요.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