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90년 전 처음 만든 핀란드 자작나무 의자… 동그란 받침대에 L자형 다리 세 개 붙여

입력 : 2023.10.24 03:30

스툴 60

1933년 알바 알토가 제작한 '스툴 60'. /비트라디자인박물관
1933년 알바 알토가 제작한 '스툴 60'. /비트라디자인박물관
이케아를 비롯해 여러 가구 브랜드에 영향을 주고 전 세계에 카피 제품이 보급된 전설의 의자 '스툴 60'이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습니다. 스툴 60은 동그란 좌판에 끝을 L자로 구부린 다리 세 개를 결합한 단순한 모습이지만, 1933년 첫선을 보인 이후 시대를 뛰어넘는 디자인 고전이 됐어요. 질리지 않는 자작나무 특유의 깨끗한 느낌이 매력적입니다.

스툴 60을 만든 주인공은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1898~1976)입니다. 핀란드 지폐에 얼굴이 등장하고, 그의 이름을 딴 국립대학이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핀란드 국민 건축가예요. 알토는 유기적 모더니즘 디자인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어요. 강철·유리·콘크리트 등을 활용해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면모를 부각한 모더니즘은 당시 유럽을 휩쓸었어요. 하지만 현대적인 면모만 강조하고 지역 특성은 무시한다는 비판이 일었죠. 알토는 국토 75%가 숲인 핀란드의 특성을 반영해 나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인간의 온기를 더한 모더니즘 디자인을 추구했답니다. 이런 경향은 북유럽 디자인의 대표적인 특징이 됐어요.

스툴 60은 알토의 애국심과 유기적 모더니즘이 만난 결과예요. 당시 핀란드에서 목제(木製) 사업은 매우 중요했어요. 핀란드 국목(國木)인 자작나무를 주로 사용했죠. 알토는 자작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게 가난한 조국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산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목제 가구는 '토넷 No.14'였어요. 1859년 독일 출신 가구 업자 미하일 토넷이 유연성이 뛰어난 너도밤나무를 뜨거운 습기와 열로 부드럽게 만든 후 금속 틀에 넣어 마음대로 구부려 만든 의자였죠. 등판·다리·좌판 등 의자 각 부분을 따로 만들어 작게 포장한 뒤 사용자가 직접 조립하도록 했어요. 대량생산 바람을 타고 '빈 카페 의자'로 불리며 약 70년간 5000만 개 이상 팔렸답니다.

자작나무는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고급 목재였지만, 마음대로 변형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알토는 스툴 60을 만들면서 특허를 냈답니다. 바로 '벤트 L-레그'예요. 자작나무를 벌목해 다리 길이로 자른 후, 위에서 톱으로 커팅해 내부에 기다란 홈을 여럿 냈어요. 강도가 약해진 틈을 타서 열과 물로 부드럽게 만든 후, 얇은 자작나무 합판에 접착제를 발라 다리 틈에 일일이 끼워 넣었죠. 그리고 기계로 끝부분을 정확히 90도로 꺾는 '무릎 굽히기'를 하고 충분히 말려서 'L자'로 만들었어요. 자작나무를 손쉽게 변형하면서도 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할 수 있었죠. 동그란 좌판과 90도로 꺾은 다리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나사로 결합하면 구조가 매우 안전해지죠. 다리가 밖으로 나란히 빠져나와서 스툴을 차곡차곡 쌓을 수도 있고요. 수납력이 월등히 좋아지는 거예요.

원과 직선, 곡선과 곡면으로 이루어진 스툴 60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아요. 내구성이 뛰어나고 기능성도 좋죠. 세상에 나온 지 90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공간에나 어울릴 정도로 현대적이랍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