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수명 다한 위성 260개, 남태평양의 '위성 무덤'에 빠뜨렸죠

입력 : 2023.10.24 03:30

우주 쓰레기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이달 초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국의 위성TV 서비스 기업 '디시 네트워크(Dish Network)'에 벌금 15만달러(약 2억원)를 부과했습니다. 이 사례는 우주 쓰레기를 실제로 단속하고, 벌금을 물린 첫 번째 사례가 됐습니다.

현실 문제 된 우주 쓰레기

우주에서 벌어진 일로 법적 문제가 불거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우주에 실험과 거주가 가능한 공간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을 띄우는 실험을 진행했어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수명을 다한 스카이랩 정거장은 지구로 떨어뜨려 대기 마찰로 소각하려 했죠. 하지만 예측 실패로 파편이 1979년 호주 남서부 에스페란스 마을에 떨어졌습니다. 이 마을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쓰레기를 버렸다며 벌금 400달러를 부과했어요.

1978년에는 소련 정찰위성 코스모스 954호가 캐나다 북부에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위성에 들어 있던 원자력 전지였죠. 파편이 추락한 지역에선 방사능 청소를 해야 했어요. 캐나다는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고, 3년 교섭 끝에 소련은 300만캐나다달러(약 30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우주 쓰레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코스모스 954호 사건은 우주 쓰레기보다 방사능 오염 물질에 초점이 있었죠. 에스페란스 마을 사건은 마을 주민이 반쯤 장난삼아 청구한 거였고요.

이번 디시 네트워크 사건은 위성을 쏜 주체가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지 않아 일어났습니다. 문제가 된 위성은 2002년 발사한 '에코스타 7호'입니다. 미국에 24시간 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성으로, 20년이 흐른 지난해 수명을 다했어요. 인공위성은 연료를 다 써서 궤도 수정을 하지 못하면 수명이 다했다고 봅니다. 에코스타 7호의 연료가 바닥을 보이자 디시 네트워크는 이 위성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무덤 궤도'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300㎞를 이동해야 했지만, 예상보다 남은 연료가 적어 고작 122㎞밖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위성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우주 쓰레기가 됐습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위성의 무덤'

1990년대부터 우주 쓰레기 문제가 불거지자 국제연합(UN)은 우주 쓰레기 규제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1993년 우주 개발이 활발한 국가들의 우주청이 모여 국제우주쓰레기조정위원회(IADC)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일본·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등 항공 우주 기관과 유럽우주국(ESA)이 속해 있습니다. IADC는 2002년 첫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 이를 꾸준히 개정하고 있습니다. '위성이 임무를 다한 뒤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폐기할 수 있도록 한다' '위성 궤도를 정할 때 기존 위성이나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지 않도록 한다' 등 내용을 담고 있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위성 수명이 다해갈 때쯤 고도 200~1만㎞의 저·중궤도 위성은 지구로, 3만6000㎞ 이상 정지궤도(고궤도) 위성은 고도를 더 올려 무덤 궤도로 보내야 합니다. 지구로 끌어들일 때는 가장 피해가 적은 위치로 떨어뜨려야 합니다. 작은 위성이라면 대기 마찰로 소각되겠지만, 크기가 크면 파편이 지표까지 닿기 때문이죠.

남태평양 한가운데에는 위성의 무덤 '포인트 니모(Point Nemo)'가 있습니다.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선장의 이름에서 딴 것이죠. 포인트 니모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은 고도 400㎞ 상공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 우주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 약 2700㎞ 떨어져 있어요. 1971년부터 2016년까지 수명을 다한 위성 260여 개가 이곳에 수장됐다고 합니다. 러시아 우주 정거장 '미르'도 여기로 떨어졌습니다.

무덤 궤도는 수명을 다한 정지궤도 위성을 보내는 곳입니다. 지구에서 멀어진 만큼 공간도 넓은 데다, 애초에 정지궤도 위성은 저·중궤도 위성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무덤 궤도에 올라간 위성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지구와 멀어지면서 사라집니다.

우주 쓰레기 처리 위성 발사 예정

ESA는 2025년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위성 '클리어스페이스-1'을 발사할 예정입니다. 로봇 팔 4개로 목표물을 붙잡아 지구로 돌아오면서 대기 마찰로 완전 연소시키는 계획입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인류는 처음으로 자력으로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게 됩니다.

일본 우주개발기업 '아스트로스케일'은 2021년 청소용 실험 위성 '엘사-d(ELSA-d)'를 발사했어요. 쓰레기 역할을 하는 더미 위성을 함께 발사해 청소 위성으로 붙잡는 실험이죠. 엘사-d는 위성을 제작할 때 금속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해 자기력으로 쓰레기를 끌어모읍니다.

2018년 영국 서리대 연구팀은 영화 '승리호'처럼 대형 그물과 작살을 이용한 실험에 성공했어요. 그물을 발사해 목표물을 수거하는 방식이죠. 러시아 기업 '스타트로켓'은 폴리머폼이라는 끈적한 물질을 발사해 우주 쓰레기가 달라붙게 하는 방식을 실현 중이에요. 일단 쓰레기를 붙잡은 뒤 지구 대기로 진입시켜 소각한다는 발상입니다.

고도 3만6000㎞ 이상 정지궤도 위성을 치우는 데는 중국이 처음 성공했습니다. 2021년 중국은 청소 위성 '스젠21호'를 발사해 2009년 고장 난 베이두-2 항법 위성을 끌고 무덤 궤도로 견인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기술을 두고 다른 나라 위성을 고장 내거나 엉뚱한 곳으로 보내는 목적으로 쓸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쓰레기를 치우는 위성이 오히려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로봇 팔이나 주머니 등이 초속 7~10㎞로 움직이는 우주 쓰레기와 부딪쳐 부서지면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는 거죠. 기술이 우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지, 오히려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습니다.

오가희 어린이조선일보 편집장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