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체코 필은 드보르자크 첫 지휘… 게반트하우스는 280년 역사
입력 : 2023.10.16 03:30
100년 오케스트라
- ▲ 체코 프라하에 있는 극장 루돌피눔에서 공연 중인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페이스북
굴곡진 체코 현대사를 겪은 체코 필
24일 공연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체코 필)는 체코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프라하 국립극장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1894년 처음 등장했어요. 1896년 1월 4일 지금 이름으로 첫 공연을 했는데, 이날 지휘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였습니다.
체코 필은 1908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로 그의 교향곡 7번을 세계 초연했는데, 이 연주는 체코 필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이후 바츨라프 탈리히, 라파엘 쿠벨리크, 바츨라프 노이만, 이르지 벨로흘라베크 등 체코 출신 거장들이 차례로 음악 감독을 맡으며 기량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1948년 공산 혁명, 1968년 소련의 침공 등 국내외적 사건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어요. 체코 필은 1946년부터 프라하 블타바강 유역에 있는 공연장인 루돌피눔을 본거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음향으로 유명한 이 홀은 1919~1939년 무렵 체코슬로바키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체코 필은 드보르자크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밉니다. 지휘자는 2018년부터 음악 감독을 맡은 세묜 비치코프입니다. 195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음악을 공부했지만, 소련 정부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매네스 음대에서 학업을 이어갔어요. 비치코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단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요. "음악은 우리 삶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런 연주를 하기 위해 단원 모두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원칙을 갖고 연주에 임한다고 합니다.
20대 신예 지휘자가 이끄는 오슬로 필
체코 필의 시작이 드보르자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30일 내한 공연을 갖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오슬로 필)의 기원에는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가 있습니다. 그리그와 필하모닉 협회가 합심해 1871년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의 옛 이름) 음악 협회를 만들었고, 이 단체가 1919년 오케스트라를 탄생시켰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후 두 차례 전쟁으로 침체를 겪었어요. 오슬로 필은 전쟁 후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음악 감독을 맡기 시작한 1962년, 최초로 스칸디나비아 밖에서 연주하는 등 재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오슬로 필이 큰 도약을 한 데에는 1979~2002년 지휘를 맡았던 거장 마리스 얀손스의 기여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얀손스와 오슬로 필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공연과 음반 양쪽에서 인정받으며 유럽 최고 수준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어요.
얀손스 이후 앙드레 프레빈, 유카 페카 사라스테 등이 이끌던 오슬로 필은 2020년 새로운 상임 지휘자를 맞이합니다. 당시 24세에 불과했던 신예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 주인공이죠. 핀란드 헬싱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메켈레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명교수 요르마 파눌라에게 지휘를 배웠습니다. 21세 나이에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해 화제를 낳았던 메켈레는 그 후 실력과 인기가 수직 상승해 오슬로 필과 함께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도 맡고 있어요.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차기 음악 감독 자리도 보장돼 있죠. 작년 데뷔 앨범으로 오슬로 필과 함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녹음한 메켈레에게 클래식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직물 회관'서 이름 딴 오케스트라
다음 달 15일과 16일 공연을 갖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무척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1743년 라이프치히 상인들이 비용을 모아 음악가 16명이 출연하는 개인 음악회를 열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죠. 1781년 음악회는 라이프치히 시내에 있는 한 직물 회관을 개조한 홀에서 열리기 시작했고, 이해가 본격적인 오케스트라의 시작이 됐습니다. '게반트하우스(직물 회관)'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온 것이에요.
오케스트라가 발전한 데에는 1835년부터 13년간 음악 감독을 지낸 펠릭스 멘델스존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 후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걸작을 초연했어요.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바이올린 협주곡,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등이 이들의 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역대 지휘자들의 면면도 훌륭합니다. 아르투어 니키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 등 거장들이 음악 감독을 지냈어요. 특히 1970년부터 27년간이나 장기 집권한 쿠르트 마주어는 900회 이상 악단의 공연을 이끄는 동시에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2018년부터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는 이번이 첫 내한입니다. 라트비아 태생으로, 현재 보스턴 심포니 음악 감독을 겸직하는 넬손스는 40대 중반에 들며 그 원숙함을 더해가고 있죠. 2020년 빈 신년음악회 지휘를 맡았으며 보스턴 심포니와 쇼스타코비치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브루크너 교향곡을 녹음해 음반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개한 세 오케스트라 외에도 이번 가을 우리나라를 찾는 오케스트라는 모두 각자 음악적 색깔과 개성적인 해석을 갖춘 최고의 연주가입니다. 공연장을 찾지 못하더라도 여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그 차이점을 느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 ▲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운데)와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 1781년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첫 공연이 열린 홀을 그린 그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