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할머니가 손녀에게 보낸 편지 35통… 자연과 사귀는 법 하나씩 알려줘요

입력 : 2023.10.12 03:30
[재밌다, 이 책!] 할머니가 손녀에게 보낸 편지 35통… 자연과 사귀는 법 하나씩 알려줘요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너도 그래

야나기사와 게이코 지음 | 홍성민 옮김 | 전국과학교사모임 감수 | 출판사 공명 | 가격 1만5000원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레이철 카슨은 타임지(誌)가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이에요. 인류에게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죠. 마지막 책 '센스 오브 원더(The Sense of Wonder)'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965년 출간됐어요.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한 책이죠. 우리가 평생에 걸쳐 '경이로움'이라 부를 만한 '감각'을 어떻게 길러 나갈 수 있는지 설명해요. 또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연에 대해 느낀 생생한 감동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죠. 카슨은 조카의 어린 아들 로저와 함께 밤바다에 나가고, 숲길을 거닐며 꽃이나 나무·동물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밤하늘을 바라봐요. 자연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기쁨을 나누고 모험을 하는 곳이라고 그녀는 말해요.

일본 생명과학자 야나기사와 게이코는 카슨의 삶과 철학에 깊이 공감했어요. 특히 어릴 적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우리 삶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한 유고 산문집 '센스 오브 원더'에 감동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할머니가 되자 손녀에게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로 했어요. 편지 35통을 통해서요. 자연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아 가르치려 하기보단,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연과 사귀라는 카슨의 당부대로 야나기사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책은 생명의 탄생과 진화, 다양한 생명체의 갖가지 놀라운 습성과 특징, 최초의 생명이 가진 유전자 정보가 어떻게 지금 내 몸속에 저장돼 있는지까지 생명과학을 총체적으로 설명해요.

"엄마가 어릴 때, 리나는 어디 있었어?"라는 손녀의 질문에 과학자인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해요. "엄마가 어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엄마가 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도 리나는 이미 엄마의 배 속에 있었단다. 그런데 그건 진짜 리나가 아니라 리나가 될 난자였지. 아기는 유전 정보가 쓰인 38억년 전의 편지를 갖고 배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북방여우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새끼 여우는 이른 봄에 태어나 여름 무렵이면 벌써 어미를 따라다니며 사냥을 배운다고 해요. 할머니의 편지는 이런 내용으로 이어져요. "가을이 되면, 놀랍게도 어미가 갑자기 새끼를 공격하기 시작한단다. 새끼들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쳐! 아직 어리고 귀여운 얼굴의 새끼는 이제부터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중략) 리나는 인간의 아이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인간은 약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주기 때문에 그들도 살아남을 수 있잖아. 그렇게 하면 인간의 강함을 상실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나는 강한 사람만의 사회보다는 배려하는 사람이 만드는 사회가 좋다고 생각해." 이렇듯 자연을 보호하고 인류를 구할 힘은 지식보다는 따뜻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