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성취감 떨어지고, 모든 행동이 점수로… 4인 4색 작가들이 시험 없는 세상 그렸죠
입력 : 2023.10.05 03:30
시험이 사라진 학교
'학교'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많은 이가 시험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시험 보는 시간은 학교 생활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에요. 마음은 몸보다 더 피곤합니다. 그동안 노력해 공부한 성과를 시험으로 냉정하게 평가받잖아요. 만점을 얻지 않는 이상 결과에 만족할 수가 없죠. 시험이 끝나면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걱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그러니 시험은 모든 학생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예요. 그런데 학교에서 시험이 사라질 수는 없을까요?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본 주제일 거예요. 이 책은 바로 이런 상상을 문학으로 구현했어요. 작가 4명이 참여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펴낸 단편소설집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이란 독립된 짧은 이야기 여럿을 늘어놓아 한 작품으로 만든 것을 말해요.
소향 작가가 쓴 '나의 유토피아 방문기' 주인공 지원은 수학 시험을 망친 날 갑자기 말랑해진 문을 통해 평행 세계로 이동해요. 모든 것이 똑같지만 시험만 없는 곳이에요. 지원은 학업에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막상 시험이 없는 세계가 좋지만은 않아요. "나는 여기에 계속 머물기엔 뭔가 억울했다. 시험이 없는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서 '공부 잘하는 나'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 보여주어도 선생님들은 칭찬하지 않았고, 이런 걸 좋아하는 줄 몰랐다며 웃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던 지원은 결국 시험이 존재하는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옵니다.
김이환 작가의 단편 '김민준 던전 일기'는 '10년 전, 서울 광화문 땅이 갈라지더니 마계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렸다'는 설정으로 판타지를 펼쳐요. 주인공 민준의 꿈은 마법 대학에 입학해 마법을 개발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거예요. 대학에 입학하려면 시험 대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이 훌륭한 마법사임을 증명해야 하죠.
'띠링, 이름표가 울리면'은 현직 과학 교사이기도 한 윤자영 작가 작품이에요. 시험이 없는 학교라는 상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요. 시험은 사라졌지만, 대신 일상의 모든 행동이 점수로 환산돼 피곤한 건 여전해요. 정명섭 작가의 '마더의 결단'은 79년 후 미래 사회가 배경이에요. 주인공과 친구들은 모두 인공 자궁에서 태어났어요. 인공 지능과 로봇은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험을 아예 금지하는 세상을 만들었어요. 로봇의 보호인지 지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상상까지 통제받고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주인공은 과거에 존재했다는 '시험'이란 것을 궁금해하기 시작해요.
시험은 노력한 성과를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하기 위한 건강한 노력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험이 탈락과 서열화의 도구로만 사용되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겼어요. 이 책은 시험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