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피렌체는 메디치家 후원으로 번성
입력 : 2023.10.04 03:30
르네상스 상업도시
- ▲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모습. 베네치아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하지만 유네스코는 “베네치아가 기후변화와 지속적인 개발, 대규모 관광 등 인간의 개입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는 것을 검토했어요. /유네스코
과거 베네치아는 피렌체, 밀라노 등과 함께 르네상스를 이끈 도시였어요. 르네상스 시기 각 도시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한번 살펴봐요.
지중해 무역 발달하며 정치적으로 독립
유럽의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흔히 르네상스 시대라 해요. 르네상스는 신(神) 중심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을 중심에 두자는 흐름으로 중세를 끝내고 새로운 과학의 시대, 근대의 바탕을 마련했어요. 르네상스 정신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탈리아였어요. 새로운 정신은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네덜란드·영국·독일 등으로 퍼져 나가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됐어요.
14세기 중엽 지중해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탈리아에선 상공업과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어요.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운 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 등은 자치권을 사들여 정치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유산이 많이 남아 있었고, 유럽에선 잊힌 그리스·로마 고전 연구도 십자군 전쟁을 치르며 이슬람 국가로부터 다시 유입됐어요. 여기에 도시 국가의 부유한 통치자들이 고전 문화 연구를 후원하면서 인간 중심적 문예 부흥 운동인 르네상스가 일어났죠.
중계 무역으로 성장한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400개 이상의 다리로 연결된 섬 118개로 이뤄져 있어요. 도시 전체에 걸친 수로를 통해 배로만 다닐 수 있는 '물의 도시'로 유명하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도 계단이 많고 좁아 자동차나 자전거 등 탈것이 거의 없대요.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 북부 지역 석호(潟湖) 위에 만들어졌어요. 얕은 바다 진흙 바닥에 잘 썩지 않는 나무 기둥을 촘촘히 박아 넣고, 그 위에 석회암으로 된 얇은 판을 깔고 건물을 지었어요. 도시의 가장 밑바닥은 진흙이기 때문에 매년 조금씩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곳에 살기 시작했을까요? 5세기 게르만족의 이동 속에서 이민족을 피해 처음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고립된 지형 때문에 여러 이유로 피란민들이 모여들면서 도시가 커졌다고 해요. 베네치아는 8세기 동로마 황제의 성상숭배금지령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 시기부터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베네치아는 9~12세기 사이 강력한 도시 국가로 성장했어요. 서유럽과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 아시아를 잇는 중계 무역을 하면서 세계 무역 중심지가 됐어요. 또 제4차 십자군(1202~1204)에 참여해 비잔티움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수많은 문물이 베네치아로 들어왔죠. 이때 동쪽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서쪽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포크와 냅킨, 식사 전 손가락을 씻는 문화 등을 서쪽에 전해준 것이 바로 베네치아인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베네치아는 커다란 부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막강한 도시 국가가 됩니다. 경제적 번영은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문화로 이어졌어요.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정신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베네치아에서 꽃핀 르네상스 문화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14세기 말 경제·문화 중심지 된 피렌체
피렌체는 1세기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6세기 무렵 안정적인 도시로 성장했지만, 8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 샤를마뉴 대제의 지배를 받았어요. 11세기 초반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다툼으로 '카노사의 굴욕'이 일어났는데, 이때 피렌체 상인 귀족들은 끝까지 교황 편에 서서 황제군에 맞섰어요. 설욕을 위한 황제의 침략 전쟁에서 승리한 상인 귀족은 자연스럽게 피렌체 지배 계층으로 자리 잡았어요.
12~13세기 피렌체는 모직물 산업과 금융 기술이 크게 발전해 상인과 노동자가 모여들며 큰 도시로 발전했어요. 13세기 중반에는 신흥 상인 계층이 성장하면서 기존 세력과 대립했는데, 시민·노동자·농민의 지지를 받던 신흥 상인 계층의 혁명을 통해 강력한 공화국으로 변신했습니다. 한때 교황과 대립해 도시 전체가 파문(가톨릭에서 신도 자격을 빼앗는 일)당하며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14세기 말이 되면 무역과 금융 발전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경제·문화 중심지가 됩니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문화가 크게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이었어요. 메디치 가문은 13세기부터 피렌체에서 세력을 키웠는데, 15~17세기 상업과 은행업을 통해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어요. 메디치 가문의 조반니는 메디치 은행을 만들었고, 그의 아들 코시모는 이탈리아 다른 지역뿐 아니라 영국 런던, 프랑스 아비뇽 등지에 은행 지점을 늘리며 금융업을 확대했어요.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대에 이르러 메디치 가문은 황금기를 맞았어요. 로렌초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시기 위대한 예술가들의 활동을 후원하며 르네상스의 절정을 이끌었어요. 메디치 가문의 우피치 궁전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국립미술관이 될 만큼 엄청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어요.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도시이자 메디치 가문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로 볼 수 있습니다.
- ▲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주변 모습. 베네치아처럼 피렌체도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어요. /피렌체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