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37년간 아나운서였던 한국어 전문가… 우리말의 바른 표현 100가지 알려줘
입력 : 2023.09.21 03:30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저자는 37년 동안 KBS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해온 사람이에요. 말을 섬세하고 깊게 연구해 국립국어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서 표준어와 맞춤법, 방송언어 등에 대해 강의했다고 해요. 얼마 전 은퇴한 뒤 한국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한국어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유익해요. 배우면 당장 써먹을 수 있어 더없이 실용적이기도 해요.
저자는 말 자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말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맥락을 함께 들려줍니다.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을 외우라는 식이 아니라, '말하기의 원리'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합니다.
'무척' '매우' '퍽' '사뭇' '썩' '꽤' '제법' '자못'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많은 단어를 몽땅 'very'라는 단 한 단어로 번역할지 모르겠어요. 이처럼 부사는 '용언이나 문장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해주는 품사'를 의미해요. 그래서 한글로는 '어찌씨'라고 하지요.
저자가 이처럼 영어 'very'에 해당하는 많은 한국어 부사를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일상 회화에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교양 있는 화자로서 가려 쓰는 게 좋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저자는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그것만으로도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우리말 표현은 딱 100개예요. 물론 우리가 자주 틀리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관한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뜻을 알고 바르게 써야 하는 표현들, 오랫동안 사용해 왔지만, 차별과 혐오가 담겨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표현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중에서도 언어 감수성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워요. 가령 동화 제목인 '미운 오리 새끼'를 두고 '누군가의 초라한 언어 감수성이 빚어낸 비극적 결과'라고 비판해요. 강아지, 생쥐, 송아지처럼 새끼 형태의 낱말이 따로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단어 '새끼'를 그 동물 명칭의 앞에 놓아야만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거예요. 새끼 곰, 새끼 노루처럼요. 그러고 보니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미운 새끼 오리'로 번역했다면 훨씬 동화답고 좋았을 뻔했네요.
생각이 나면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주로 생각하지요. 정확하고 세련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바로 그런 말 훈련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