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엄마와 함께 '첫 숨' 내쉰 순간 기억하며 먼바다로 홀로 떠나는 혹등고래 이야기
입력 : 2023.09.14 03:30
나의 첫 숨 너의 노래
강그늘 작가는 고래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봤다고 해요. 갓 태어난 혹등고래가 첫 숨을 쉬는 순간이에요. 고래는 코가 머리 꼭대기에 있어요. 수면 위로 떠오르면 콧구멍을 열어 숨을 쉬고, 물속으로 들어갈 때는 콧구멍을 닫아요. 등 위로 물을 뿜는 것은 고래의 날숨 때문이죠. 어미는 갓 낳은 새끼에게 호흡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몸을 써서 새끼를 물 위로 밀어올려요. 새끼는 어미 배 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내죠. 책은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해요.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바다를 가까이하며 자란 정은진 화가는 고래의 모습과 바다의 풍경을 서정적이면서도 장엄하게 표현했어요.
주인공은 갓 태어난 새끼 혹등고래예요. 그의 이름은 '첫 숨'이에요. 책 도입부에서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왔다가 엄마 고래와 함께 밤하늘을 보는 장면은 무척 환상적이에요. "정말 밝고 커다란 우주 연못이구나"하고 엄마 고래가 속삭이자, 새끼 고래는 '내 안에도 작은 우주가 솟아났어'라고 생각해요. '첫 숨'은 열대 바다에서 태어나 엄마와 단둘이 지내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요.
하지만 고래나 사람이나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영원할 순 없어요. 곧 극지방을 향해 떠나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돼요. 무려 8017㎞에 이르는 엄청난 거리를 헤엄쳐 가야 해요. 그렇게 해서 마침내 도착한 북극 바다에서 '첫 숨'은 친구들을 만나요. 이들과 어울리면서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덩치도 커지면서 어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지요. 한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떠나 이제 독립할 시기가 다가온 거예요.
엄마 곁을 떠나 먼바다로 나서던 날, 물살은 유독 차가웠고 '첫 숨'은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을 하며 극복해요. '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아.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바다처럼.' 그날 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하늘에는 신비로운 빛이 가득 펼쳐져 있었어요. 오로라네요. 그림책 양면 가득 하얀 빙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밤하늘의 오로라가 숨 막히게 아름답게 펼쳐져요. '첫 숨'은 가슴 뛰는 자신의 눈부신 내일을 보는 듯하다고 느껴요.
'첫 숨'이 먼바다로 홀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 혹등고래는 이렇게 말해요. "그 모든 처음을 기억해. 아가야, 이제 너에게 멋진 처음을 선물할게. 너의 우주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렴." 이제 자신만의 길을 떠나는 '첫 숨'의 이름을 엄마는 바꿔줘요. "너의 이름은 '아름다운 노래'야."
책 속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는 알아요. 이 이야기는 끝이 없다는 것을요. 언젠가 '아름다운 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혹등고래가 자신의 아이 '첫 숨'을 데리고 멀고 먼 바다를 헤엄쳐 다시 돌아오겠지요. 대자연과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답고도 장엄한 바다 풍경이 무척 인상적인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