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반항과 불법이던 벽화… 지금은 고가의 미술품 대우 받죠

입력 : 2023.09.11 03:30

거리 미술

사진1 - 뱅크시, '풍선 없는 소녀', PEST CONTROL OFFICE 2023.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사진1 - 뱅크시, '풍선 없는 소녀', PEST CONTROL OFFICE 2023.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매년 9월 초는 미술계가 축제를 벌이는 시기입니다. 여러 갤러리가 한자리에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가 열리거든요. 올해는 6~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됐습니다. 작년부터는 영국을 본부로 하는 세계적 규모 아트페어 '프리즈(Frieze)'도 연합해 축제의 장이 커졌어요. 올해도 프리즈에 참여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스타 미술가의 작품을 싣고 와 서울 전시장에 펼쳐 놓았습니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작품을 멀리 외국까지 가지 않고도 만날 절호의 기회였지요.

경매장에서 작품 훼손한 뱅크시

5년 전인 2018년 10월 영국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리는 주간에 소더비가 주관하는 미술품 경매장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날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가 1위' 뱅크시의 작품 한 점이 경매에 오를 예정이었어요. '풍선 없는 소녀'〈사진1〉라는 작품인데, 인천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서 11월 5일까지 공개됩니다. 처음에는 보통 경매처럼 진행됐는데, 어떤 고객에게 낙찰이 선언된 순간 믿기 어려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기계음이 울리더니 갑자기 그림이 액자 속에서 잘게 찢겨 밑으로 흘러나왔어요. 뱅크시가 애초에 그림 내부에 파쇄기를 설치해 원격조종한 것이었죠.

뱅크시가 미술품을 비싸게 파는 것이 목적이 된 미술 시장을 조롱하기 위해 대담하게도 경매장 관객 앞에서 자기 작품을 파손하는 행위예술을 기획한 것이었어요. 경매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경매장을 발칵 뒤집어 놓을 의도였나 봅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중간에 파쇄기가 멈추는 바람에 그림의 반쯤은 액자에 걸려 살아남았습니다. 그림을 산 고객은 엄청난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거래를 취소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작품을 받기로 했어요. 이 그림은 런던 워털루 다리 사우스뱅크에 벽화〈사진2〉로도 그려졌으나, 지금은 지워지고 없습니다.

뱅크시는 건물 벽에 몰래 그림을 그려 놓는 거리 미술가로 출발했어요. 건물 소유자나 시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경찰에게 잡힐 만한 불법행위로 간주됐으므로, 뱅크시는 진짜 이름과 얼굴을 숨긴 채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벽화들이 소문을 타서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됐고, 지금은 아마도 뱅크시가 그림을 그리면 마다할 건물 주인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뱅크시 이야기를 꺼냈으니 거리 미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해요.



사회적 쟁점에서 시작한 거리 미술

거리 미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을 방문하는 미술 애호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그림이니까요. 요즘에는 거리 미술을 주류 미술계에 반발하는 미술가들의 작업으로 보거나 사회적 쟁점이 있는 미술 일종으로 폭넓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거리 미술이 눈에 띄게 나타났던 1960~197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항해 목소리를 낼 때였고, 지배 문화에 대한 반항 의식 자체가 바로 거리 미술의 핵심이었어요. 당시 벽이나 기차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놓는 그라피티(graffiti·낙서화)를 포함한 거리 미술은 대부분 반사회적인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뱅크시의 국제적 인기 덕분인지 몇몇 도시에서는 거리 미술에 열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사진3〉에서 보듯, 런던 워털루역 아래 터널을 따라 걷다 보면 다음과 같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터널, 그라피티 허가 구역. 범법자처럼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범법자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경찰의 단속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197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비롯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원주민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각각 문화적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벽화를 사용했습니다. 1970년대 약 10년 동안 캘리포니아주에서 그려졌다가 사라진 벽화는 대략 1500점이 넘었다고 해요. 주제는 평등과 화합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다수였습니다.

한 예로 주디스 바카(1946~)의 '로스앤젤레스의 위대한 벽'〈사진4〉은 홍수 통제 배수관 벽을 따라 그린 것으로 벽화 길이가 약 840m나 됩니다. 이 벽화는 1974~1984년 그려졌어요. 화가를 보조하는 조수만 40명이었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청년들 400여 명, 역사학자 40명, 그리고 지원자가 100명 이상 참여했다고 해요. 긴 그림 속에는 19세기 후반 중국 노동자들의 철로 건설, 1930년대 멕시코 이민자들의 추방,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이 억류된 장면 등이 담겨 미국 서남부 이민족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미국 뉴욕도 거리 미술이 활발한 도시였어요. 뉴욕 출신 키스 해링(1958~1990)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불쑥 내려 즉흥적으로 빈 벽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사진5〉에서 보듯, 만화처럼 보이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와 굵은 선으로 단순화해 묘사한 인물·동물 형상이 해링 그림의 특징입니다. 그림이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고 믿었던 그는 거리에서의 작업을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오늘날 거리 미술의 핵심은 반항과 불법이라기보다는 소통과 공유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시대가 흐르면서 거리 미술의 의미도 바뀐 것이죠.

사진2 - 뱅크시, '풍선 없는 소녀', 영국 런던. /위키피디아
사진2 - 뱅크시, '풍선 없는 소녀', 영국 런던. /위키피디아
사진3 - 영국 런던 워털루역 리크 스트리트 터널 내부 그라피티. /위키피디아
사진3 - 영국 런던 워털루역 리크 스트리트 터널 내부 그라피티. /위키피디아
사진4 - 주디스 바카, '로스앤젤레스의 위대한 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위키피디아
사진4 - 주디스 바카, '로스앤젤레스의 위대한 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위키피디아
사진5 - 키스 해링, '벽화'(일부), 미국 뉴욕. /키스해링파운데이션
사진5 - 키스 해링, '벽화'(일부), 미국 뉴욕. /키스해링파운데이션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