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4000년 전 종교 행사에 사용… 16세기 유럽에선 '인형의 집' 유행

입력 : 2023.09.05 03:30

인형

기원전 2000년쯤 물건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패들 인형’. /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기원전 2000년쯤 물건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패들 인형’. /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7월 19일 국내 개봉한 영화 '바비'가 워너브러더스사의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최고 매출 영화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2011)였어요. 영화 '바비'는 바비랜드에 살고 있던 바비 인형이 현실 세계로 떠나 겪는 이야기를 다뤘어요. 영화 예고편에는 '태초에 여자아이가 있었던 이후로 언제나 인형이 있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인형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요?

인형의 역사를 석기시대 토우부터 시작한다면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또한 인형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인형은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대체로 인형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기원전 2000년쯤 유물을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흔히 '패들 인형(paddle doll)'이라고 불리는 이 인형은 널빤지를 팔이 짧고 다리가 없는 여성의 몸통처럼 조각한 후 구슬을 엮어 만든 머리카락으로 장식한 형태입니다. 대체로 종교 행사를 위한 인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형이 언제부터 장난감 용도로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아요.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에는 이미 장난감 인형이 널리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인형이 출토되는 무덤이 대부분 세상을 일찍 떠난 아이들의 무덤이기 때문이에요. 점토나 나무로 만든 인형 외에 상아나 뼈 등으로 만든 인형도 출토되고 있어요. 이 시기 인형은 인체 관절도 묘사하기 시작했고, 실존 인물을 묘사한 인형도 등장합니다. 이후 인형은 나무, 종이, 천, 밀랍,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와 모습으로 제작돼 발전했습니다.

인형이 점차 정교해지면서 16~18세기 유럽 상류층 사회에선 인형 관련 유행이 돌기 시작했어요. 바로 '인형의 집'이에요. 실제 자기 집과 똑같은 모습으로 정교한 모형을 만들어 벽 등에 전시한 후, 자기 가족과 똑같은 모습의 정교한 인형을 설치해 감상하는 거였죠. 독일에서 시작한 인형의 집은 이후 유럽 여러 나라로 퍼지며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오랜 기간 유행했어요. 1921~1924년 사이 제작돼 현재 영국 윈저 성에 보관 중인 메리 왕비의 인형의 집(Queen Mary's Dolls' House)은 실제 전기와 수도가 작동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형의 집으로 꼽힙니다.

유행하는 패션을 보여 주고자 인형이 사용되기도 했어요. 18세기를 거치면서 최신 유행하는 옷이나 장신구를 외국에 소개할 목적으로 인형에 입혀 다른 나라로 보내는 방식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패션 잡지 삽화가 더 보편화됐고, 인형 속에 비밀 메시지를 숨길 수 있다는 이유로 나폴레옹 1세가 이를 금지했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