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단순·명료한 '미니멀리즘' 디자인 인기… 저작권 민감해 아이폰 놓고 국제소송전

입력 : 2023.09.05 03:30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적용한 1984년 매킨토시. /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적용한 1984년 매킨토시. /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올해는 애플 '아이맥(iMac)' 출시 25주년입니다. 아이맥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1955~2011)가 1997년 임시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해 내놓은 첫 제품이었어요. 파산 직전의 애플을 살리며 이후 애플 신화의 초석이 됐죠. 아이맥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디자인이었어요. 유려한 곡선의 일체형 컴퓨터 케이스를 청록색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마감해 획일적인 PC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부품이 눈에 보이는 아이맥의 '누드 디자인'은 당시 대유행했어요.

1976년 애플 창업 이래 잡스와 디자인은 떼어놓을 수 없어요. 초기 애플의 히트작은 1984년 출시한 매킨토시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를 갖춘 최초의 가정용 PC였어요. 당시 PC는 사용자가 키보드를 두드려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했어요. 그런데 잡스가 마우스 커서를 이용해 컴퓨터와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는 GUI 기술을 팰로앨토 연구소에서 사들여 자사 제품에 적용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처럼 '드래그 앤드 드롭'으로 다양한 아이콘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게 됐죠. 폴더를 닮은 아이콘을 누르면 새로운 창이 열렸고, 쓸모없는 파일을 휴지통에 넣으면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런 직관적인 사용성을 기반으로 디자인 프로그램이 줄줄이 생기면서 그래픽 디자인 생태계가 천지개벽을 맞습니다. 컴퓨터만으로 책을 디자인하고 간단하게 인쇄할 수 있는 '쿼크익스프레스'는 책상 출판 시대를 열었습니다. 어도비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래픽 디자인을 순식간에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시켰죠. 모두 처음에는 매킨토시 전용 프로그램이었어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NeXT'라는 회사를 세우고, 이듬해 루커스필름에서 컴퓨터 그래픽(CG)을 담당하던 부서를 인수합니다. 이곳은 현재 세계 최고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ar)'가 됐습니다. 1988년 잡스의 지원으로 만든 단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틴 토이'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탔어요. 이를 모체로 발전한 작품이 세계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입니다.

아이맥을 시작으로 아이팟, 아이폰, 맥북, 맥북 에어, 아이패드 등 잡스가 쏟아낸 제품은 단순하고 명료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특징이에요. 그가 생전 믿던 일본 선불교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의 검정 터틀넥 니트,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만 고집한 옷차림도 같은 맥락이죠.

그는 '애플 스토어' 오픈을 진두지휘하고 죽기 전까지 애플 신사옥에 매달리는 등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거대한 유리 상자처럼 생긴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매장의 통유리 구조와 유리 계단은 잡스 명의로 특허까지 땄답니다. 사실 잡스가 취득한 특허는 수백 건이에요. 그는 저작권에 유난히 민감해 아이폰 디자인을 두고 전례 없는 국제 소송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