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서부 영화에 휘파람 넣고… 아시아인 첫 아카데미 음악상
입력 : 2023.09.04 03:30
영화음악 작곡가
- ▲ 엔니오 모리코네. /엔니오 모리코네 페이스북
올해 3월에는 또 다른 탁월한 영화음악 작곡가의 부음이 들려와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죠.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가 오랜 기간 암 투병 끝에 71세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멋진 영상만큼이나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동을 주었던 두 인물의 삶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서부 영화로 첫 성공
1928년 11월 태어나 2020년 7월 숨진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 로마가 고향입니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트럼펫을 공부했던 엔니오는 9세 때부터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함께 작곡, 지휘 등을 배웠어요. 음악원에서 그의 스승은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계 거장이었던 고프레도 페트라시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순수 음악 작곡가를 지망했지만, 모리코네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낮에는 대중가요 등을 편곡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트럼펫을 불며 돈을 벌어야 했죠. 1961년에는 '파시스트'라는 작품에서 첫 영화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 친구이자 미국에 건너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세르지오 레오네와 의기투합해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던 서부 영화 시리즈 음악을 담당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등 작품에서 모리코네는 하모니카와 리코더, 휘파람, 채찍 소리 등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리와 인상적인 선율을 결합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냈죠.
이 작품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모리코네는 '서부 영화 전문 작곡가' 이미지를 거부하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시네마 천국(1988)' 등에 나오는 감동적인 음악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죠. 모리코네는 아름다운 선율뿐 아니라 뛰어난 상황 묘사, 인물의 성격을 음악으로 설명하는 능력에서도 누구보다 탁월했습니다.
일생 동안 무려 500편 넘는 영화음악을 작업했던 모리코네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상과 인연을 맺기까지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2007년 공로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다섯 번이나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가 실패했죠. 2016년 기다리던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그에게 안겨 준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서부 영화 '헤이트풀8(2015)'이었습니다. 서부 영화로 첫 성공을 거뒀던 모리코네는 마지막 영광도 결국 서부극과 함께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작곡가·연주자·배우까지
사카모토 류이치는 모리코네와 비교해 활동 영역이 넓었습니다. 영화음악뿐 아니라 팝, 뉴에이지풍 작품을 쓴 작곡가이자 건반악기 연주자,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배우 경력도 있죠.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네 살 때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스스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 도쿄 예술대학 작곡과에 입학했고, 거기서 다른 전공 학생들과 다양하게 어울리며 음악 외 예술 분야에 대한 경험을 쌓았죠. 졸업 후 여러 가수의 건반 악기 세션을 담당하던 사카모토는 동료 2명과 함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라는 이름의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팝 음악을 지향했던 이 그룹이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사카모토라는 이름을 알렸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데이비드 보위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독특한 전쟁영화예요. 사카모토는 여기서 영화음악 작곡과 배우를 동시에 맡았는데, 테마 음악으로 쓰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가 큰 인기를 끌며 현재까지도 그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후 역시 영화음악과 배우를 동시에 맡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로 골든 글로브, 그래미상을 비롯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 '레인'도 크게 히트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회식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등 세계적인 작곡가로 자리 잡은 사카모토는 그후 분주하게 솔로 활동과 프로듀서, 영화음악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 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음악을 맡았으며, 2017년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국악인 김덕수와 협업해 화제였죠.
사카모토는 병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어요. 작년 12월 'Playing the piano'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고, 올해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의 음악을 썼습니다. 지난 4월 발표된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노래 '스누즈(Snooze)'에 참여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과 함께했습니다.
모리코네와 사카모토,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선율은 이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널리 사용되며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가 됐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돼 주는 클래식 명곡처럼 이들의 음악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주길 희망합니다.
- ▲ 영화 ‘황야의 무법자’ 포스터. /위키피디아
- ▲ 영화 ‘시네마 천국’ 포스터. /위키피디아
- ▲ 사카모토 류이치./페이스북
- ▲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위키피디아
- ▲ 영화 ‘마지막 황제’ 포스터.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