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언어·신화·종교 속에 있는 '놀이'… 오늘날의 문화 만든 원동력 됐죠

입력 : 2023.08.29 03:30

호모 루덴스

1955년 출판된 ‘호모 루덴스’ 영문판 표지. /오픈라이브러리
1955년 출판된 ‘호모 루덴스’ 영문판 표지. /오픈라이브러리
인간이나 동물에게 다 같이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기나 만들어 내기만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바로 ‘놀이하기’다.

네덜란드 출신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가 1938년 발표한 '호모 루덴스'는 "놀이가 문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심층적으로 파헤친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인류학의 고전(古典)이에요. 하위징아는 놀이가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이라는 전제 아래, 예술·종교·문학·철학 등 인류 문명에 영향을 준 다양한 현상을 설명했어요.

인간이 다른 생명 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하위징아는 '생각하는 인간' 이전에 '놀이하는 인간'이 있었다고 강조해요.

문화인류학 연구에 매진했던 하위징아는 인류가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긴 사회 작동 원리, 이를테면 언어와 신화, 종교와 각종 의례, 시가(詩歌)와 철학, 예술 등을 살펴보니 그 모든 것에 놀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었다고 주장했어요.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놀이가 천박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이에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게 놀이라는 인식이 어느 틈엔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죠.

하위징아는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아이들은 실제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고상한 것, 더 위험스러운 것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죠. 어린이들이 꿈꾼 게 미래 세계에서 하나둘 현실이 되면서 인류 문명은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어요.

하위징아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시(詩) 역시 '놀이로 태어나고 놀이 속에서 태어난다'고 주장해요. 저자가 '의심할 바 없이 신성한 놀이'라 칭하는 시에는 거룩함이라는 문화적 속성이 있지만, 그 이전에 특유의 즐거움·분방함·환희·쾌활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 문화보다 더 오래된 놀이는 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을까요? 하위징아에 따르면 그건 인간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종교·예술 등 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다양한 가치 체계를 만들면서 인간은 점차 진지함을 추구했어요. 진지함을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바로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진지함을 내포하는 문화는 놀이를 늘 배제하려 하지만, 놀이는 진지함마저 잘 포섭하는 유연한 성질이 있어요. 놀이는 그만큼 포용력이 넓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놀이에 집중하고 있나요? 혹시 놀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요? 놀이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호모 루덴스'는 놀이가 사라진 우리 시대에 시사점이 많은 책이에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