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갈대 무성한 습지, 1988년 10만명 입주해… IMF 뒤 업무지구엔 주상복합단지 들어서
입력 : 2023.08.22 03:30
목동 신시가지
- ▲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일대 전경. /남강호 기자
이곳은 과거 갈대밭이 무성한 습지였어요. 주변 안양천이 자주 범람하고 공장에서 오·폐수가 흘러 농지로 활용하기 어려웠죠. 둑을 따라 무허가 주택이 많았는데, 당시 서울 서부 지역에서 월세가 가장 쌌다고 해요.
1983년 4월 서울시 주도로 신시가지 조성 계획이 발표됩니다. 당시 극심한 주택난으로 임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죠. 목동은 김포공항과 도심을 잇는 길목에 있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에게 발전한 서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그런데 서민에게 값싼 주택을 대량 공급한다는 계획은 건축가 김수근의 제안으로 한 달 만에 뒤집혔습니다. 그는 서울이 발전하려면 항구도시 인천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돼야 하고, 도심·여의도·영등포와 경인고속도로 사이에 중심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목동 신시가지를 서울 서부 중심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김수근과 강병기, 오즈월드 네글러 등은 여러 아이디어를 합쳐 대지 남북을 관통하는 중심축이 있는 선형 도시를 계획했어요. 총 4㎞에 달하는 선형 중심축에 상업·문화·행정·공공시설을 모두 밀집시켰고, 건너편 14개 아파트 단지와 도로로 연결했어요. 지금 봐도 참 획기적입니다.
1983년 12월 착공한 아파트 단지는 1988년 주민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10만명이 사는 거대 주거지가 됐어요. 문제는 중심축이었습니다. 서울 서부 중심지를 목표로 목동종합운동장, 이대부속병원, 서울국제우체국, 남부지방법원 및 검찰청, CBS 방송국 등이 생겼지만, 대기업 본사, 국제회의장, 대규모 상업 시설이 들어서야 할 중심업무지구는 1990년 첫 공매에서 인기가 전혀 없었어요. 경기 호황을 타고 1994년 공매에서 매진됐죠. 당시 국내 최대 백화점, 최고층 오피스텔과 호텔, 최대 R&D 센터 등이 제안됐지만,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면서 대부분 물거품이 됐어요. 결국 2000년대 들어 주상복합단지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목동 신시가지는 대치동과 함께 국내 최대 사교육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2006년 토지 용도 제한이 폐지되고 중심축에 학원이 들어서면서 건물 전체를 학원으로 채운 경우도 심심찮게 생겼죠. 그래서 교육부 정책이나 부동산 시황을 확인하는 잣대로도 종종 쓰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