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독자에게 낭독하며 고쳐 쓴 짧은 소설들… 세상 보는 작가 시선처럼 따뜻한 이야기
입력 : 2023.08.21 03:30
너무나 많은 여름이
책 제목과 시원한 느낌의 물색 표지가 여름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에요. 김연수 소설가의 신작으로, 소설 20편이 한 권에 묶여 있어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거나 볼 때 그 순간의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뒷이야기도 궁금할 때가 많지요. 때로는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기도 해요. 이 소설집 역시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소설 20편이 달리 보입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2021년 10월 제주도에서 2023년 6월 창원까지, 여러 도서관과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낭독하는 과정을 거치며 소설을 썼다고 해요. 읽고 듣는 과정을 통해 소설을 다시 쓰기도 했대요.
2021년 10월 제주 낭독회에서 작가는 소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문보다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고, 강연회보다는 짧은 소설을 읽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고요. 팬데믹 이후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첫여름' '여름의 마지막 숨결' 같은 요즘 계절감에 맞는 소설이 여럿 있지만, 작가의 자전 소설로 보이는 표제작이 인상 깊어요. 어머니의 임종을 앞둔 화자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구보씨처럼 길을 걸으면서 어머니와 얽힌 추억을 돌아보죠. 그토록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평화를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깨달음을 얻어요.
화자는 만약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허기지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멀고도 둥근 종소리'라고 쓸 거래요. '그렇게 종소리를 듣고 들어가면 엄마가 차린 저녁밥이 있는' 곳, 그게 화자에겐 '집'이라고요.
줄거리만 들으면 '어두운 얘기 아닌가'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문장이 매우 섬세하고 다정해 무겁지 않아요. 글을 쓴다는 건 곧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라 하죠. 김연수 작가가 다정한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설 역시 다정할 수밖에요.
낭독회에서 읽기 좋게 쓴 소설이라 각 작품 분량이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어요. 책 뒤편의 '플레이 리스트'를 유튜브에서 검색해 재생하며 이 소설을 읽으면 독서 경험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어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무더웠던 올여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예요.